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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깊어지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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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깊어지는 가을입니다
  • 한덕현
  • 승인 2019.10.0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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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사람 숫자놀음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저간에 빚어지고 있는 현상은 전통적 논리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 ’87년 대선 때 여의도 100만 군중 경쟁을 현장에서 경험한 나로선 그저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과거의 관제나 동원, 혹은 자율적 참여라는 단순 프레임 만을 가지고는 지금의 현상을 모두 풀어낼 수가 없다. 어느 땐 보수와 진보라는 피아(彼我)구분이 분명해지다가도 또 어느 순간 같은 진영의 목소리에도 파열음이 난다. 윤석열이 현 정부의 검찰개혁에 반기를 든다면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들어내면 그만일 텐데 지금은 이조차 쉽지 않다.

조국 청문회를 앞둔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 처음 이 소식을 접한 많은 국민들은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짜고치는 뭐 정도로 여겼던 게 사실이다. 난데없이 임명권자의 발목을 잡은 그 돌발의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보다 더 좋은 추론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그럴 경우 윤석열은 살아있는 권력에도 어깃장을 놓는다는 예의 ‘원칙주의자’ 이미지로 향후 검찰개혁에도 소위 총대를 멜수 있겠다고 예단한 것이다.

한데 이런 분석은 빗나갔고 곧이어 윤석열이 조국의 장관내정에 대해 모종의 채널로 윗 선에 부적격 입장을 전했다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상식의 예측은 더 이상 설땅을 잃게 된다. 아직 이 것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청문회를 앞둔 기습적인 압수수색에는 분명 윤석열의 숨은 의도가 있을 거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돌았다.

윤석열의 패착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어떤 의견을 냈든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의를 달고 행동에 나섰다면 이거야말로 오버다. 정치와 통치행위를 권력의 속성으로 보지 않고 검찰이라는 자기집단의 사유로만 재단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것의 구체적 행동이 조국일가와 친인척에 대한 전방위적 압수수색, 무려 70여 회에 달한다는 무리수를 밀어붙이게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예상외의 대규모 촛불시위에 스스로가 다시 검찰개혁을 약속했다지만 그 이전까지는 윤석열의 행보는 철저한 ‘검찰주의자’의 발로로 보였고 결국 이 것이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미 몇 차례 지적했지만 윤석열이 가장 경계할 것은 자신에 대해 배신의 딱지가 붙여지는 것이다. 역대 정권의 사례처럼 친 정부적 검찰상을 주문하는 게 아니라 인간 신의의 기본을 얘기하는 것이다. 촛불 집회 이후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도 그렇다. 자칫하다간 현 정권에서 토사구팽은 커녕 아예 쓰임도 되기 전에 버림을 받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반대 세력에 의해 윤석열이 지켜질 일도 아니다. 그 쪽에서도 마찬가지가 된다. 잘 나가던 정치인이 한 번 변절과 배신의 낙인이 찍히면 어디를 가도 행세를 못하는 것과 똑같다. 김문수가 좋은 예다. 이 시점에서 윤석열이 택할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길은 조국 수사를 소신껏 마무리하고 자진사퇴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처많은 조국도 조만간 뒤따르게 된다. 검찰력으로 조국을 낙마시켜 본인의 선명성을 곧추세우려는 욕심을 너무 부린 것의 후유증은 이렇다.

 

어느덧 조국 사태는 궤도에서 벗어나도 한참이나 벗어났다. 정의와 양심의 문제가 정치권과 검찰의 합작으로 이념과 진영의 갈등으로 변질된 것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보수나 진보, 여당이나 야당 할 것없이 모두가 대책없이 포퓰리즘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한국당은 검찰개혁 촛불시위를 민주주의의 가장 타락한 군중정치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반대 세력들에겐 그들의 삭발 릴레이가 자해행위로 보일 뿐이다.

야당과의 정치관계에서 유연성이 부족한 문재인 대통령도 문제이지만 머리를 싹뚝 밀어도 야당 당수로서의 투쟁성보다는 까까머리 중학생을 연상시키는 황교안이나, 여전히 옹아리 수준의 화법에 머물러 있는 나경원의 정치력이 정곡을 못 짚고 계속 겉도는 것도 큰 문제다. 도대체 감동이 없다.

우리에게 촛불과 태극기, 미투, 노란 리본, 을(乙)의 반란, SNS 등으로 상징되는 포퓰리즘은 사실 포스트 민주주의를 대체할 가장 급진적 정치체계,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까지도 극복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위험은 곳 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중들이 정치적으로 새로 태어나 뭉치고 결코 민중에 도움이 안 되는 대의정치와 기성체제 그리고 엘리트 과두제를 부정하며 부패, 불평등과 차별까지도 직접 손보려는 포퓰리즘은 늘 전복(顚覆)이라는 혁명적 가치를 수반하게 된다.

때문에 민주주의 질서의 새로운 좌표와 헤게모니 구성을 위해 좌파 포퓰리즘을 편향적(?)으로 지지한 상탈 무페 조차도 자신의 저서<For a left populism>를 통해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이렇게 지적했다. 이를 요약한다.

“포퓰리즘은 좌우 거대한 대립과 충돌을 유발할 수 있다. 포퓰리즘 계기에 어떤 정치가 결합하고 작용하느냐에 달라진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열광해 불안을 동반하고 언론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거부한다. 제도적 기대감보다 거리투쟁에 직접 나서며 사회 부정의와 불의에 대한 적대감을 거침없이 드러내기에 궁극적으론 체제전복도 각오해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 처지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 정치와 국회가 포퓰리즘에 계속 의지하고 기댄다면 국회는 당장 해산해야 맞다. 바람이 있다면, 이렇게 어려울 때 김정은이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평화와 통일의 확실한 디딤돌을 놓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북한도 언젠간 정치의 포퓰리즘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게 된다. 천하의 후세인과 카다피도 비켜가지 못한 혁명 말이다. 더 늦기 전에 남한 변수로 그나마 자구책을 마련하는 게 신상에 좋다.

그나저나 조국 사례는 도덕성과 사회적 정의라는 측면에서 진보나 보수 심지어 시민운동까지 똑같은 놈들, 오십보백보라는 것을 실체로써 확인시켜 준 꼴이 되었으니 앞으로 이 나라가 기댈 건 과연 무엇인가? 고민이 깊어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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