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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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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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헌 석(서원대 법학과 교수)
   
야만적인 성추행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의 뉴스만 보더라도, 교사가 학생들을 성추행하여 학부모들이 분노하고 있고, 교도관의 성추행으로 여성재소자가 자살하였다. 또한 국회의원이 기자를 성추행하여 사퇴압력에 직면해 있다. 이렇듯 우리사회 곳곳이 성추행으로 심각하게 병들어 가고 있다.

성추행이 다른 범죄보다도 비난 받는 이유는 그 범죄의 파렴치성과 회복불능의 상처 때문이다. 그래서 성추행은 고문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이기에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 성추행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성추행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개인적 도덕불감증과 함께, 다른 사람의 인격은 무시하고 짓밟아도 된다는 집단적 광기가 어우러져 만들어 낸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이처럼 성추행 문제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보는 것은 거의 모든 성추행사건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만 다를 뿐, 똑같은 배경과 과정을 거쳐 예정된 결말을 보게 된다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성추행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가 아닌 권력적 지배복종관계로 얽혀 있는 봉건적 조직문화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사례처럼 교도소에서 여성재소자들이 성적 괴롭힘을 당했지만 또다시 가해질 불이익을 걱정하여, 저항도 못하고 입밖에도 내지도 못한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연희 의원이 음식점 여주인인 줄 착각했다는 변명은 한마디로 낮은 신분은 아무렇게도 해도 된다는 봉건시대의 권력의 속물근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주변에서 성추행이 만연한 것은 아직도 우리의 성의식이나 조직사회문화가 여전히 시대착오적이고 봉건적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일 뿐이다.

다음으로는 성추행사건에서 가해자가 속한 조직은 진실을 밝혀내려는 노력보다는 은폐하기에 혈안이 된다. 수감 중인 여성 4명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군산교도소가 그렇고, 최연희 의원 사건초기에 그저 해프닝으로 몰아 가려했던 한나라당도 역시나 마찬가지다.

조직의 힘을 동원한 파렴치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직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오히려 피해자를 협박하고 회유하면서 이중의 고통을 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이런 부도덕함을 지적한 사람은 조직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죄명을 씌워 철저히 파괴시켜 버린다. 그 결과 우리사회는 “성추행을 당하고도 침묵하지 않으면 파멸과 죽음이 되고 마는 어둡고 우울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더 나아가 똑 같은 변명을 늘어놓는 것도 예외가 없다. 학생을 추행한 교사는 “순순한 마음에서 애정표시로 했을 뿐이다”라고 하고, 정치권에서는 “술이 만취해서 기억이 없다”고 둘러댄다. 즉 가해자가 주범이 아니라 애정표현이나 폭탄주가 주범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식의 옹색한 변명이 사회적으로 먹혀들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성추행사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피해자책임론과 가해자에 대한 인간적 동정론이다. “여자의 행실에 문제가 있다”거나 “남자가 술에 취하면 실수할 수도 있지, 단지 재수가 없었다”라는 동정론이 힘을 얻으면서 가해자에 대한 면죄부가 부여된다.

물론 가해자에 대한 인간적 동정론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칙과 과오에 대한 평가없이 무작정 감정적으로 던지는 피해자책임론과 온정주의는 성추행사건의 본말을 전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추행을 당연시하는 괴이한 사회풍조를 만들어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결국 문제는 성추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용인하고 옹호하는 우리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딸을 편안히 키우고, 아내와 성추행 걱정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이런 뒤틀린 사회의식을 바로 잡는데 모두가 나서야 한다.
성추행 가해자에 대해서는 냉정한 처벌로 간담을 서늘하게 해야 하고, 어설프고 유치한 변명에 동조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정면에서 비판하고 질책하여야 한다. “성추행이 별것 아니라고?, 판단하기 힘들다고?” 그렇다면 “딸이라고 생각하라, 자기 아내가 당했다고 생각하라. 딸도 아내도 없다면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하라.” 그러면 성추행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추악한 범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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