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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레이머니 장군은 어떤 숙제를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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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레이머니 장군은 어떤 숙제를 남겼나
  • 충청리뷰
  • 승인 2020.01.2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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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민들 시리아·예멘에 돈 쏟는 정부 비판
이란의 지정학적 딜레마 당분간 메아리 칠 듯

 

이란이 다시 문제의 중심에 올라서면서 중동이 시끌시끌하다. 특히 거셈 솔레이머니 장군 사살로 시작된 문제가 이란의 항공기 격추와 그로 인해 다시 점화된 시위로 옮겨붙으면서 불확실성은 훨씬 더 커진 모양새다. 이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당초 원인을 제공했던 솔레이머니 장군 피살 문제는 이제 안중에도 없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더 화급한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이전의 문제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솔레이머니 장군 피살이 제기한 근본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솔레이머니 장군이 제기한 문제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살펴봐야 할 이란의 현대사
먼저 솔레이머니 장군이 이라크에서 피살된 것을 상기해보자. 많은 이들이 “왜 미국은 뜬금없이 이라크를 공격하였으며, 이란 장군은 또 왜 남의 나라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던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철통 같이 지켜져야 할 ‘국경’의 의미가 없어보였던 이 사건은 사실 솔레이머니 장군이 담당하던 임무의 특수한 성격에서 기인했다.

솔레이머니 장군은 혁명수비대 산하 해외작전군인 ‘쿠드스군’의 사령관으로서 20여년을 복무했다. 그의 부대는 이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국가에서 명성, 혹은 악명을 떨쳐왔고 이 때문에 쿠드스군의 활동은 미국과 이란 사이의 직접적 갈등 현안이었다. 그렇다면 이란은 왜 이런 위험천만한 군사 활동을 20년 이상 전개해온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이란의 현대사를 살펴봐야 한다. 먼저 1953년 민족주의자인 모사데그 총리가 영국과 미국에 의해 축출된 일이 있었다. 이는 이란 현대사의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다. 이 때를 계기로 격화된 반서방 정서가 결국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외세 정서가 혁명의 열기를 타고 너무나 세게 타오르면서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성난 이란 군중이 미 대사관을 점거하여 444일 동안 인질극을 벌이고, 이라크의 시아파들로 하여금 독재자 후세인에게 맞서 봉기하라는 선동을 하기도 하였다.

이는 모두 이 지역의 지정학적 상황을 급격히 불안정하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행동들이었고, 끝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군이 대대적으로 이란을 침공하게 된다.

8년이나 이어진 참혹한 전쟁이 끝났어도 이란 지도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초강대국인 미국이 후원하는 국가들인 터키, 이스라엘, 사우디가 이란을 중심으로 퍼져있었다. 한편 사우디가 지원하는 순니파 극단주의가 발호하면서 동쪽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도 새로운 안보 불안 요소로 떠올랐다.

거기에 미군은 자신들이 8년 동안 싸워도 굴복시키지 못했던 후세인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처리하면서 그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었다. 테헤란에 앉아서 세계 지도를 바라보면, 자기들이 포위되었다고 느끼기 아주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레바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시아파를 활용해 지렛대를 확보하고자 했다.

미국과 이란의 역학관계
역설적인 것은 이란을 축으로 하여 전개된 미국의 활동이 이란 측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해줬다는 것이다. 후세인 몰락으로 숙적 이라크가 붕괴되면서 그 지역의 시아파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은 더욱 공고해졌고, 이란은 힘을 투사할 창을 마침내 얻게 되었다.

여기에 아랍의 권위주의 정권들이 연쇄적으로 위기에 빠지면서, 상대적 안정을 구가하던 이란은 운신의 폭을 더욱 넓혔다. 예멘과 시리아까지도 이란의 촉수가 닿게 된 것이다. 국가가 사실상 붕괴한 지역들에서 민병대 같은 비정규군이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고, 이들을 지원하고 조율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솔레이머니였다.

이렇게 구축된 ‘이란 제국’이 팽창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은 더 역설적이다. 갑작스런 이란의 팽창은 사우디의 안보 불안을 유발하였고, 두 국가는 10년 가까이 중동에서 냉전을 벌이면서 다투게 되었다. 공동의 숙적 IS가 사라지자 미국도 다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이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이라크에서 이란의 지나친 영향력에 반발한 시위가 벌어지면서, 미국과 이란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솔레이머니 암살을 둘러싼 넓은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제국은 갑작스럽게, 너무 엄청난 수준으로 팽창했다.

이 팽창의 함정이 지정학적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이란 정부에는 더 큰 고민일 것이다. 사우디와의 지역 냉전은 경제난에 시달리는 이란이 엄청난 돈을 주변국의 우호 세력에게 퍼붓도록 사실상 강제했다. 곤궁에 처한 자국민은 아랑곳 않고 시리아와 예멘에 돈을 쏟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시민들 사이에서 팽배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최근 시위대가 며칠 전까지 순교자로 추앙받던 솔레이머니의 사진을 끌어내리고 발로 찬 것은 이제 그 같은 낭비를 끝내라는 분노의 발현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내외적 반발에 직면했다고 하여 이란이 갑자기 자신의 제국을 포기할 것인가? 사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제국이 평화롭게 후퇴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의 이란과 거의 비슷한 위기에 맞닥뜨린 소련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손쉽게 그들의 제국을 포기하는 일도 있었다. 따라서 솔레이머니는 갔지만 이란과 그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한 켠에는 그가 제기했던 이란의 지정학적 딜레마가 당분간 계속 메아리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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