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법 그리고 인간의 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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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법 그리고 인간의 존엄
  • 충청리뷰
  • 승인 2020.02.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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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24세 꽃다운 나이, 고 김용균이 발전소 하청직원으로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하고 1년 여. 제2의 김용균을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 이른바 김용균법이 지난 1월 16일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김용균법에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지만 그 중 핵심은 세 가지이다. 첫째, 산재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 범위를 원청 사업장 전체와 사업장 밖 원청이 지배 관리하는 위험 장소까지 확대하였다. 둘째, 도금작업과 수은·납·카드뮴 가공작업 등 위험 작업에 대하여는 사내 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셋째,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근로자를 사망하게 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5년 이내 재발 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행 초기부터 김용균법은 환영이 아닌 비판, 기대가 아닌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동계는 이 법이 불완전하며 따라서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겠다며 하청을 금지한 사업장에 김용균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발전소는 들어가 있지 않다. 처벌이 강화되기는 하였지만, 형벌의 하한이 없어서 산업재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관행은 계속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김용균이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반대로 산업계는 원청과 하청, 노동자 사이의 역할과 책임이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범법자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 산업안전 문제는 해도 너무 하다는 것이다. 한 해 1000명가량이 일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데, 이것은 하루에 2~3명꼴이다. 한국의 산재사망 노동자 수는 유럽연합의 5배,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1위이다. 최근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충북 지역에서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소폭 감소하였지만, 유독 충북 북부 지역에서는 2019년에 26.7%가 증가되었다.

다수의 제도적 개선 과제가 남아 있으나, 그보다 앞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우리 안의 외주화 욕망을 버려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위험한 것, 지저분한 것, 유쾌하지 않은 것은 외주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며, 심지어 온갖 차별까지 가하고 있다. 개인적 입장과 처해 있는 사정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이러한 경향이 사회 저변에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둘째, 여건을 감안하여 되는 만큼 안전을 확보하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 우선 안전을 확보하고 그에 맞추어 여건들을 조정하거나 개선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모든 기업의 사정이 같지 않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영세 사업장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적어도 안전과 생명은 물러설 수 없는 원칙이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만의 힘으로 어렵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위험한 일을 대신해 줄 수단으로 타인을 이용하려는 외주화 욕망을 극복하고, 이윤 극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노동자를 취급하는 관행을 혁파하는 것, 이것이 헌법 제10조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2020년 대한민국에 내리는 준엄한 명령일지 모른다. 이 조항은 인간을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대우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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