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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중력이 미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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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중력이 미칠 수 없는
  • 충청리뷰
  • 승인 2020.03.1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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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영원한 뮤즈, 비너스를 마주하다

 

비너스(아프로디테)는 지중해의 푸른 물결을 헤치고 태어났다는 미의 여신이다. 그리하여 태어날 때부터 그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화 속의 여신이었던지라 그 자태의 형상화는 어디까지나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형상화되었다고 평을 받는 작품이 바로 밀로의 비너스다. 이 조각상은 1820년 4월,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밀로스 섬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어 오늘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발견될 때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은 이 세기의 걸작은 1821년 루이 18세에게 헌납된 다음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또한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예술품들의 방대함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관람객도 참 많다. 그 많은 관람객 속에서 복잡한 미로를 찾아다니며 작품을 제대로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조금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림의 호수도 작은 편이었다. 그 앞에 정좌하여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했다. 불과 10여초, 속수무책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그런 탓일까? ‘모나리자’의 그 휘황한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별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부끄럽지만 그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그러다가 덜컥, 만난 것이다. ‘모나리자’ 전시실에서 밀려나 다소 피곤할 즈음 마침내 내 문학의 영원한 뮤즈, 그녀를 만난 것이다.

완벽한 8등신에다 황금비율을 가지고 있다는 밀로의 비너스. 황감하게도 그녀는 상체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도발적으로 다가오는 팽팽한 젖가슴. 마른 침 꼴깍거리며 눈길을 아래로 슬쩍 미끄러트리면 거기, 흘러내리는 치맛자락이 아슬아슬하다. 가까스로 골반 부위에 멈춰 있다. 그리고 그것을 붙잡고 있었을 양 팔이 없다. 누구였을까? 저 양 팔을 부러트린 사람은.

루브르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불현듯 나 또한 한 마리 늑대가 되어 그녀를 향해 뛰어오르고 있었다.

여전히 고혹적인
- 밀로의 비너스

젊은 날이었어
당신의 절대적 고혹을 만난 것은
아직도 지중해의 푸른 물결 넘노는
팽팽한 수압의 젖가슴
그 봉긋한 꼭지에 눈길이 닿으면
그만 온몸이 후끈했지
잘록한 허리를 지나 조그만 더
조금만 더, 조급했지 서둘러 침대를 고치고
커튼 찢어 이부자리도 새로 만들고
마른 침 꼴깍, 침대머리에 앉았다가
먹물 제단에 붓 한 자루 올리고는
사나흘 밤낮 치성을 올리기도 했지
주체할 수 없는 혈기였어 기다림에 지친
늑대 한 마리 기어코 네 발굽을 쳤지
단숨에 뛰어 올라 왼쪽 팔을 물어뜯고 아예
오른쪽 팔마저 물어뜯고
그러면 엉치에 걸쳐 있던 치맛자락
주르륵 흘러내릴 줄 알았던 거야
그리하여 그토록 열망하던 우담바라
활짝 꽃문 열 줄 알았던 거야
철없는 객기였어 잔인한 만용이었어
감히 중력이 미칠 수 없는
아름다음의 궁극
그런 초절정의 블랙홀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거야 오래도록
회한과 자위로 이부자리는 얼룩졌고
세월은 속절없이 그네를 탔지
이제 나는 늙어 버렸어 붓 끝은 갈라지고
먹물엔 노을이 깃들기 시작했어
그런데 어쩌자고 당신은
여전히 한결같은 자태인 거야
고혹적인, 처음 그대로의

 

/장문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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