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바느질하다
상태바
명품을 바느질하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8.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 명 현 도안공동체 대표
   
시골에 내려오는 사람들중의 대부분은 남자들이 귀농을 결심하고 가족을 거의 끌고 오다시피하는 경우가 많아 여자들이 시골살이에 적응하는 것이 귀농하여 살게 되느냐 다시 떠나는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여자들이 단순히 남자의 뒷받침이나 하고 손님 뒷치닥거리나 하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텃밭가꾸랴, 이웃과 적응하랴, 몸도 마음도 모두 힘들어지게 되고 만다.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데 찾아오는 손님들마저 “ 이렇게 공기좋고 물좋은 곳에서 흙집에 나무집에 정말부럽다”며 손이라도 잡는다면 “그렇게 좋아보이면 네가 와서 살아봐라” 하면서 투덜거리게 된다.

어쩌다 한번 자고가는 것은 좋지만 그 집을 가꾸고 만들고 하느라고 드는 품은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다. 시골살이에 적응하고 있는 여자들이 자급자족의 꿈을 이루기위해 옷만들기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장님들끼리 모여서 뭔가를 하려니 난감하기 그지없고 발전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중에 참 좋은 바느질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여러곳에서 강의를 하시면서 그 중에 한 강좌는 수강료를 받지 않는 모임을 하시고 싶어 마음을 쓰고 계시던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자급자족의 필수품이면서도 잘하지못해 아킬레스건처럼 약점이던, 그렇게도 잘하고 싶었던 바느질을 정식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나누면서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셨던 선생님은 서울에서 이곳까지 차비를 들이시면서 시간을 내고 마음을 쓰시면서 찾아주셨다.

첫모임에 들고온 우리의 바느질도구는 도끼자루만큼이나 큰 이불 꿰메는 대바늘과 재봉실이었고, 감침질, 시침질, 홈질, 세땀상침, 그리고 무엇보다먼저 매듭만드는 방법부터 신기해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그렇게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가르치고 싶은 선생님은 천을 여기저기서 얻어오시고, 규방공예나 퀼트가 아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싶어했던 우리의 소망을 모두 들어주신 선생님과 한가지씩 가져온 반찬으로 비빔밥을 해먹으면서 행복해하고 성취감과 각자의 창의력을 맘껏 발휘하며 선생님을 감동시키고 자신에게 놀라며 시골살이의 또다른 맛을 보기 시작하였다.

아내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만 보아도 좋던 남편이 우리의 모임이름을 갑션무지개로 지어 주셨고 동짓날에는 그동안 만든 모든 것을 펼쳐놓고 자랑을 하면서 동지팥죽을 나누고, 선생님께 작은 선물로 각자의 수확을 조금씩 모았다. 노동이 들어가있고 일년의 마음씀이 들어가 있는 각자의 작은 농산물에는 소중한 마음들이 담겨있고 눈시울이 찡해오는 감동이 들어 있었다.

선생님은 이불바늘을 가지고 바느질을 시작한 우리에게 작은 바늘 한 쌈씩을 선물해주셨고 그 자리가 나에게는 지금도 소중한 자리로 남아 있다. 돈으로 모든 것이 계산되는 시대에 마음을 담은 선물을 주고 받은 그 자리가 왜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 모여야 한주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알려주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매주 숙제를 해오랴 열심을 내던 우리의 모임이 일주년이 되었다. 일년을 지내오면서 개근을 한 선생님과 학생들이 자랑스럽다. 그만큼 우리가 목말라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눈이 펑펑 오던 날에도 거북이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과 눈이 올라치면 미리 읍내로 나와 찜질방에서 자고 오는 열심을 내던 것은 왜였을까? 고개넘어 재를 넘어 오면서도 좋은건 왜일까? 한시간에 한 대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짐을 들고 메고 아이 손을 잡고 걸어걸어 오던 그길이 왜 좋았을까? 왜 우리는 한주도 빠지지 못하고 모여서 밥을 해먹고 수다를 떨고 바느질을 배우고 좋아했을까?

그것은 부족한 우리의 재료를 가지고도 각자의 창작품이 나올수 있도록 모든 것을 열어주고 우리의 필요를 잘 살펴주신 선생님과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면서 정보도 교환하고 물건도 나누면서 힘이 되어주는 삶을 나눈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시간과 애정을 들여 서울에서 이곳까지 하루를 모두 내어주신 선생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행복할수 있었고 귀농을 하면서 가졌던 큰꿈보다는 재미보따리, 행복해지는 보따리 바느질도구상자를 가지게 된, 작은 행복을 누릴수있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 요즈음 우리는 남부럽지 않은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살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가지씩을 배우면서 숙제가 많아 힘은 들었지만 완성된 작품은 모두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명품이라 그 가치를 어떻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족의 필수품들을 명품으로 치장하면서 자급자족을 위한 첫바느질은 이렇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백화점에 진열된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값으로도 매길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야 말로 명품이리라. 오늘도 우리는 명품을 바느질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