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답사 일 번지’의 옛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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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답사 일 번지’의 옛 절터
  • 충청리뷰
  • 승인 2020.11.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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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사지·탑평리사지·청룡사지·거돈사지·법천사지를 찾아가 보자

 

예성문화연구회의 고 김왕기 회장은 ‘한강답사 일 번지’를 충주댐에서 원주 부론까지로 꼽았다. 한강의 흐름대로 강변에 조성된 길을 따라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든 걸어서 움직이든 참으로 편안하고 정겨운 길이기 때문이란다. 자연의 풍광을 만끽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해 온 사람의 향기가 나는 그런 곳이기에 중원문화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한강답사 일 번지’라고 하였다.

교통수단이 다양해지며 이곳을 답사하는 방법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강물이 큰 도로역할을 하여 배를 타고 오르내렸지만, 지금은 강이 피사체가 되어 옆에 난 도로를 따라 움직이며 바라보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강과 함께하기 보다는 강 옆에 난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걷거나,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뱃길이 사라졌기에 누릴 수 있는 방법이긴 하나 나름 서로의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걷기와 자전거타기, 자동차로 드라이브하기 중 가장 권하고 싶은 것은 자전거 타기이다.

최고의 백미는 옛 절터
내륙의 바다라고 하는 충주호의 시작점 충주댐에서 출발하여 하류쪽으로 탄금대, 중앙탑공원, 장자 늪, 목계나루, 가흥창, 비내섬을 거치면 바로 원주시 부론면소재지이고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섬강과 합쳐지는 곳에 흥원창이 위치한다. 한강 가에 조성된 자전거 길을 따라 아침 느즈막하게 출발해도 점심시간 전에는 도착한다. 한강의 둔치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챙겨먹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왔던 길로 되짚어 돌아오면 하루해가 저문다.

거돈사지 전경
거돈사지 전경

 

실제로 김 회장이 이야기하시던 이 ‘한강답사 일 번지’길은 시간과 방법에 상관없이 갈 때 마다 매번 새롭고 정겹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흐르는 물을 바라만 보아도 좋다. 아침에는 물안개가 좋고, 저녁에는 노을이 정겹다. 차를 타면 차창에 스치는 바람과 함께 들어오는 자연의 냄새가 좋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나른함이 좋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가에 가득 핀 하얀 감자꽃의 아련함도 좋다. 갈색풀잎 사이를 흐르는 바람의 스산함도, 내리는 눈비를 다 받아들이는 강물의 흐느낌도 좋다.

여기에 이 강과 함께 살아온 주인공을 살피면 그것이 삶이 되고 민속이 되고 역사가 된다. 한강답사 일 번지의 샛강과 나루(津)와 여울(灘)과 다리(橋), 보(堡)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주변에 발달된 고을과 마을, 그 안에서 생활하던 사람 또한 중요하다.

이 한강답사 일 번지에서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백미는 옛 절터이다. 번창했을 당시의 흔적과 함께 무상한 세월을 읽을 수 있다. 충주댐에서 출발하여 첫 번째 만날 수 있는 옛 절터는 금가면 유송리에 위치한 김생사지이다. 해동필가의 조종(祖宗)이라는 김생 선생이 만년에 두타행을 했다는 곳으로 지금은 물에 잠겼지만 김생여울, 김생제방 등 제법 이야기 거리가 있다.

김생사지에서 조금 내려오면 국보 6호인 충주 탑평리 7층석탑이 위치한 탑평리사지가 있는데 발굴을 해도 사찰의 흔적은 미미하다. 그렇지만 탄금대, 장미산, 조정경기장 등과 어울려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목계나루를 지나면 소태면 청계산 기슭에 청룡사지가 있는데 고려말 보각국사가 주석하며 선림보훈, 호법론, 선종영가집 등 많은 목판인쇄물을 박아내던 곳이다.

뛰어난 석조미술도 확인
이곳에서 하류로 내려가면 바로 원주시 부론면이 되는데 이곳 정산리에는 사적 168호인 거돈사지가 위치한다. 거대한 축대위에 사찰을 조성하였는데 문지를 통과하면 삼층석탑이 서있고, 같은 중심선에 금당지가 있고 그 중앙에 파손된 불대좌가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원공국사승묘탑지에는 승묘탑의 모형품이 놓여있는데 사찰의 후면 높은 곳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승묘탑은 사찰의 우측 길가에 있고 사역의 왼쪽에는 천년된 느티나무 등걸이 남아있다.

거돈사지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법천사지이다. 법천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되어 고려 중기에 번성하였던 대표적인 법상종 사찰이었다. 지금은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지광국사 현묘탑비와 법당터 및 석탑의 일부 등이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이 절터에서 나온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사적 466호로 지정된 절터인데 고려 문종 때 활약한 지광국사의 부도와 그 탑비가 백미이다. 최근 사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차분히 사역이 정비되고 있다.

이 법천사는 10~12세기까지 관용, 지광국사, 정현, 덕겸, 관오, 각관 등 유명한 승려가 계셨고, 조선시대에는 유방선이 이곳에 머물며 제자를 가르쳤는데 이때 한명회, 서거정, 권람 등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허균의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불타 폐사되었지만, 그후 동네이름을 서원말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폐사지에는 큰 서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강답사 일 번지’에 있는 옛 절터들은 나름 고즈넉한 정취에 흠뻑 젖게 하는 깊은 산중에 있지만 서울에서 당일 답사로 다녀오기에 좋은 숨은 명소라 할 만한 곳이다. 이곳의 상류쪽으로 단양의 비마라사지, 향산리사지, 덕천사지, 제천의 장락사지, 충주 정토사지 등이 주목되며, 하류쪽으로는 원주의 흥법사지, 여주의 고달사지까지 계속 연결된다.

이곳에 남아있는 탑, 승탑, 탑비를 통해 우리는 뛰어난 석조미술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디테일과 그 차이를 비교 감상하는 즐거움과 함께 문화의 도도한 흐름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드시길 바란다.

/ 길경택 사단법인 예성문화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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