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행 설립에는 세련된 계획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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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행 설립에는 세련된 계획 필요
  • 권영석 기자
  • 승인 2022.01.19 2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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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지방은행 설립→중소기업 대출 증가→지역경제 활성화 기대
디지털 금융시장과 경쟁은 고민거리… 충북도 용역 후 대응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에 다시 불씨 가 붙었다. 앞서 2012년과 2017년에 도 추진했지만 의견차로 좌절됐다. 이번에는 충청권 4개 시·도 지자체 장들이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진일보한 전략을 앞세워 설립하겠다는 뜻을 모았다.

목표는 2023년 설립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대형화된 금융시장은 점차 집중화되고 있고, 신협· 새마을금고 등 금융협동조합들이 오프라인을 강점으로 동네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지방은행은 역할을 잘 찾아야 한다. 어쩌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 때문에 지방은행 설립 논의를 두고 지역 중소기업, 주민들의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편집자주-

 

충북은행이 문을 닫기로 한 1998년, 청주 시민들은 충북은행 살리기 운동을 전개했다.
충북은행이 문을 닫기로 한 1998년, 청주 시민들은 충북은행 살리기 운동을 전개했다.

충청 지방은행 만들자!

불붙은 설립 운동

 

최근 충청권을 대표하는 지역은행을 설립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먼저 제주보다 경제 규모가 더 큰 충청권에 지방은행이 없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다. 과거에는 자체 경제력이 약해 지방은행이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서울·경기, 영남, 호남에 비해 충청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다. 하지만 지금은 영··호 시대라고 불릴 만큼 성장했다. 전국 대비 인구는 11%, 지역내총생산은 12.5%를 차지한다.

달라진 위상에 맞춰 12일에는 충청권 4개 시·도지사가 국회에 모여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을 대선 공약에 포함해 달라고 건의했다. 가장 먼저 응답한 쪽은 김동연 새로운 물결 대선후보다. 충청지역의 대선후보임을 자청하는 김 후보는 15일 대전을 방문해 지방은행을 만들어 지역 중소기업, 소상공인에게 유동성을 공급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도록 가칭 충청지방은행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은행의 역할

 

사실 충청권의 지방은행 설립 움직임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2년과 2017년에는 충남·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지방은행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충청권 시·도지사 협의회에서는 관련 내 용을 주제로 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2012년에는 4개 시·도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추진의 문턱까지 갔다. 하지만 은행의 설립방식을 둘러싸고 지역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지역 금융권 관계자는 지방은행이 생기면 지역기업의 자금조달이 아무래도 쉬워진다. 정치적 판단(관계금융)에 따라 대출이 결정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자금조달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이 수익성을 내기 어렵다. 지난번에 논의가 결렬된 것도 이런 이유라며 이번 설립운동에서는 차별화된 전략이 나와야할 것라고 말했다.

IMF가 터지고 우리나라는 대대적인 지방은행의 통·폐합 시기를 거쳤다. 이를 통해 은행을 대형화해서 자금조달, 리스크 관리에 유리한 금융자본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그렇게되면 중소기업 대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지방은행이 사라진 이후 관계금융보다는 시스템에 따른 거래금융이 제도화됐고, 중소기업보다 대기업들에게 대출이 쏠리는 풍토가 만들어 졌다. 국제금융학회의 은행산업의 시장집중도가 중소기업 자금조달에 끼치는 영향(2015)’에서는 은행의 통·폐합과 집중화가 중소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지방은행이 활성화되면 중소기업 자금확보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제도적으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여신규정 28항에는 시중은행에서는 원화금융대출 증가액의 45%를 중소기업에 대출할 수 있는 반면, 지방은행은 60%를 대출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60% 가까이해야 이자 지원 등의 각종 혜택을 준다. 실제로 지방은행이 있는 곳이 중소기업대출 비중이 높다. 한국은행의 조사(2008)에 따르면 지방은행이 있는 제주, 광주·전남, 대구·경북, 경남, 부산, 전북은 54.8%, 나머지 지역은 43.3%가량 중소기업에 자금을 대출했다.

 

충북 경제에 미치는 영향

 

자의 반 타의 반이지만 지방은행이 설립돼 중소기업에 투자가 활발해지면 지역소득에도 영향을 끼친다. 2021년 충북연구원이 발표한 <지역소비, 투자, 수출이 충북 노동소득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소비, 투자, 수출이 산업별로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중 건설 ( 95.4%) , 전문과학 및 기술(54.6%), 기계장비(30.7%) 분야는 투자 점유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과학, 기술 분야는 지역 산업 전체의 미래가치를 높이는 분야기 때문에 투자효용성이 크다.

그렇지만 지금 분위기만 보면 충북은 지방은행 설립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관련 이슈에 대해서 충남 지역에서 주도하고 있고 언론보도 역시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에 대해 충북도 관계자는 충북에도 당연히 지방은행이 필요하다다만 현재 충남도가 제시한 안이 2013, 2017년 추진 때와 큰 차이가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 핀테크, 블록체인 등장으로 시장 상황이 변했는데 계획은 이전과 같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과거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 또 실패한다면 그때는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충청권상생협력기획단은 올해 세워진 용역예산 1억에 충남도가 추가로 마련한 1억을 더해 총 2억원 규모의 용역을 2~3월 중 진행할 예정이다. 충북도는 용역을 통해 개선책이 세워지면 지역 기업인들과 만나 지방은행 이 용 등에 협조를 구할 예정이다.

 

충청권 지방은행의 숙제

 

공개된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안은 인터넷은행과 최소한 지점운영이 결합한 형태다. 대기업, 빅테크기업, 금융 회사 등을 대주주로 참여시켜 2000억에서 1조원 사이의 자본금을 마련한다. 현재 주요 업체들을 대상으로 지방은행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 의향을 타진하는 중이다. 굵직한 출자자가 확보되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주주 모집도 진행한다. 2023년에는 금융위원회에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 인가를 신청할 계획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은행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금융환경의 변화는 지방은행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 전체에서 차지하는 지방은행 수신점유율 이 201610.34%, 20199.56%, 20209.30% 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특별한 전략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지역 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 은행이 생기면서 수신 점유율은 더 떨어졌다. 이에 대응해 지방은행들은 고금리 상품을 내세우며 고객유치에 나서지만 어려운 실정이다또 시중은행은 부실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계 대출 중심의 영업을, 지방은행은 부실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대출 중심의 영업을 해왔기 때문에 위험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이후 6대 지방 은행들은 구조조정에 나섰다. 2020년보다 55개 점포를 줄였다. 경영을 효율화해 디지털 금융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어쩔 수 없는 시장의 흐름이지만, 이에 대해 지방은행의 역할·이용하는 인구의 노령화·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은행 신설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강원·충청지역에서는 이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대안이 없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향후 표심에 휩쓸려 설립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청주시
/청주시

충북은행의 역사

1971년 개점한 충북은행은 전국 10번째로 생긴 지방은행이었다. 충북 은행이 생기기 전까지 충북에는 시를 제외한 군 지역에 은행이 없었다. 또한 다른 지역과 달리 충청권은 남·북를 통할하는 충청은행이 만들어졌다. 이에 충북 지방은행 설립의 시급함을 느낀 정계, 재계 인사 15명이 모여 자본금 25000만원을 마련했다.

설립 후 충북은행은 성장 가도를 달렸다. 1974년 유가증권시장에 기업을 공개했고, 1977년 본점을 현재 신한은행 충북지부 자리로 신축 이전했다. 1985년부터는 신탁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온라인 서비스와 여러 자회사를 만들었다. 1996년까지 일반은행, ·외국환, 신탁, 신용카드, 유가증권을 취급했다. 지금은 충북 장학회로 이름을 바꾼 충북은행 장학회 등을 운영하며 지역사회에도 공헌했다.

한때 3500여개의 지역업체와 거래하며 총자산 27164억원, 영업이익 2054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IMF 전 후 사업이 악화됐다. 1998년에는 전체 여신의 15%에 달하는 2732억원이 부실채권을 떠안았고 자기자본비율은 -4.3%까지 떨어졌다. 정부는 1999년 초 충북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했다. 이후 조흥은행과 합병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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