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빈곤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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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빈곤층들
  • 서재욱 청주복지재단 연구위원
  • 승인 2022.03.16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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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고시텔·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에 거주, 정확한 실태파악조사 필요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해링턴은 1962년에 출간한 ‘또 다른 미국’(The Other America)이라는 책에서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주택과 교육 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빈곤’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이 이어지면서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도시의 미관이 개선되면서 대다수 사람들이 뚜렷하게 목격할 수 있던 ‘보이는 빈곤’은 사라졌다. 그러나 마이클 해링턴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도심 지역의 비참한 곳에 살고 있음에도 점점 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나 시선에서 고립된다.

 

누가 다중이용업소에 살고 있나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도 ‘보이지 않는 빈곤’은 존재할까? 각종 행정조사와 통계조사가 이루어지고 각 인구집단·영역별로 수많은 제도들이 갖추어지면서 과거에 비해 ‘보이지 않는 빈곤’의 규모는 크게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빈곤’은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거주환경이 열악한 ‘주택 이외의 거처’(비주택)에서 생활하는 인구집단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고시원·고시텔,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업소, 숙박업소의 객실, 판잣집·비닐하우스, 컨테이너, 판넬 및 조립식 건물, 창고, 마을회관, 종교시설, 노숙인시설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거처는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장소’를 의미하며, ‘주택’과 ‘주택 이외의 거처’로 분류된다. ‘주택 이외의 거처’는 주택의 요건인 ‘영구 또는 준영구 건물, 한 개 이상의 방과 부엌, 독립된 출입구와 관습상 소유 또는 매매의 한 단위’에 하나라도 부합하지 않는 거처를 의미한다.

현재 국토교통부에서는 주거실태조사,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매년 ‘주택 이외의 거처(비주택)’ 거주 가구를 파악하고 있다. 또한 2017년부터 5년마다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오피스텔과 기숙사를 제외한 비주택 거주 가구의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와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의 수는 1,000,903 가구, 가구의 비율은 4.8%로 집계되었다.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의 수는 2000년 8.4만, 2005년 21.7만, 2010년 35.4만, 2015년 71.4만 가구를 기록한 데 이어 2020년에는 처음으로 100만 가구를 넘어섰다. 참고로 충청북도에서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의 수는 19,777가구, 가구의 비율은 2.9%로 집계되었다. 2021년 현재 충청북도에 ‘보이는 빈곤층’이라 할 수 있는 노숙인이 637명으로, ’16년(739명) 대비 102명 감소한 것과는 상반되는 결과이다.

물론 ‘주택 이외의 거처’가 모두 거주환경이 열악한 곳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017년에 실시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거주 환경이 상대적으로 나은 오피스텔과 기숙사 및 특수사회시설을 제외한 보다 열악한 거처(고시원·고시텔,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업소, 숙박업소의 객실)의 비중이 절반에 가깝다. 그리고 거주 환경이 열악한 주택 이외 거처에 살고 있더라도 타지에 자가를 소유하고 있다면 일단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조사 결과 타지에 자가를 소유하지 않은 가구가 81.7%를 차지했다. 그러므로 ‘주택 이외의 거처’에 살아가는 이들의 약 40%는 ‘보이지 않는 빈곤층’일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거주 환경이 열악한 ‘주택 이외 거처’의 세부 유형은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업소 등(49.0%), 고시원·고시텔(41.0%), 숙박업소의 객실(8.2%), 판잣집·비닐하우스(1.8%) 순이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의 경우 고시원(68.7%), 비수도권의 경우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업소 등(73.1%)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거주자의 특성을 살펴보면 가구원 수는 1인가구가 71.9%, 평균 가구원수는 1.4명이었다. 가구주 연령은 60세 이상(28.4%), 30세 미만(23.9%), 50-59세(21.1%) 순이었으며, 대다수(79.2%)가 근로 중이었으나 월소득은 100만원 미만이 22.0%, 100~200만원이 29.3%로 저소득자의 비중이 높았다. 주거면적도 최저주거기준(1인 기준 14㎡) 미달가구 비율이 49.2%로 매우 열악한 편이었다.

제도적 보완도 필요

이처럼 거주 환경이 열악한 ‘주택 이외 거처’에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고, 이들의 생활환경이 대체로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실태파악조차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비수도권에서 거주 환경이 열악한 ‘주택 이외 거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업소’에 대해서는 정확한 실태파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조사에서도 편차가 심해 컨테이너, 창고, 마을회관, 비닐하우스 등과 묶어 ‘기타’로 분류하고 보다 깊이 있는 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잠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고시원을 대상으로는 민간 차원에서도 몇 차례 조사가 진행된 바 있지만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업소’에 대한 세밀한 조사는 작년 연말 한국도시연구소와 오마이뉴스에서 공동 조사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

서재욱 청주복지재단 연구위원

실태 조사와 더불어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국토교통부에서 주거취약계층의 주거수준 향상을 위해 저렴한 임대주택을 지원하는 ‘주거사다리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여인숙, 노숙인시설,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등 거주자는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데 비해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업소’ 거주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분명히 소득이 충분하지 않아 주거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업소’에서 쪽잠을 청하는 이들도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만큼 이들도 ‘주거사다리 지원사업’ 등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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