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덕 관장 “고은리에 작품 이전해 마을미술관 만들려고 해”
이전 부지 대지정리 비용 두고 현산과 미술관 측 이견 보여
스페이스몸 미술관 제2,3전시장 옆에서는 지금 포크레인이 작업 중이다. 언제 이 공간을 삼킬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청주시 가경동에 위치한 스페이스몸 미술관이 처음 이사왔을 때만 해도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다. 하지만 인근이 재개발되면서 이른바 ‘아파트촌’에 둘러싸여버렸다. 앞에는 가경자이가 있고, 뒤에는 가경 아이파크 5차가 내년 입주를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스페이스몸 미술관이 그 사이 ‘끼어’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틈에 ‘도로’가 놓이게 됐고 미술관 일부가 잘려나가게 됐다. <도면 참조>
청주에 이른바 ‘아이파크’시리즈 아파트를 짓고 있는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은 2016년께 미술관 측에 토지수용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미술관은 부지 일부가 수용되는 것에 반대의사를 표했다. 토지수용이 결정된 땅에 바로 박기원 작가의 작품 ‘평형 <Balance>’가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박기원 작가는 충북 청주 출생으로 충북대 사범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엔 제36회 김세중 조각상을 받았다.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해 전세계 미술관 및 대형 전시에 초대작가로 선정돼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평형 <Balance>’작품은 외부의 자연을 공간 안에 끌어들인 작품이다. 바닥에 옥색의 페인트를 칠하고, 빛과 공간의 조화를 살려냈다. 또 벽 하단을 약 8cm두께로 칠해 안팎의 경계를 허문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냈다. 건물 자체가 작품을 위해 설치된 상태다. 이 공간을 모티브로 또 다른 작가들이 사진 및 회화 작업을 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 줄다리기
현산과 미술관 측은 2016년부터 지금까지 토지 수용 및 작품 ‘평형 <Balance>’작품 이전 절차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미술관 측은 “현산 측과 수차례 논의를 했고,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마지막 협상을 2021년 7월쯤 했는데 한 달 뒤 8월에 갑자기 현산 측에서 미술관 부지 내 건물을 강제로 철거하기 위한 명도소송을 냈다”고 설명했다.
수일이 지난 만큼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현산 측과 미술관은 토지수용 및 ‘평형 <Balance>’작품 이전에 대한 ‘교환계약서’를 2020년에 작성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서경덕 미술관 관장은 “이미 4차례 협의를 통해 중재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담당자가 토지수용비와 작품비를 따로 책정해(명시해)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현산 측 본부에서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믿고 사인을 해줬다. 그게 패착이었다. 처음부터 ‘평형 <Balance>’작품은 이전논의를 하고 있었고 현산이 해주겠다고 약속해서 당연히 이전비용 및 과정에서 드는 비용 자체를 현산 측이 부담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한 달 뒤 계약서만 근거해 명도소송을 냈고 계약서에 토지보상과 작품비가 이미 지급됐다는 문구가 있어 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제3의 중재자 필요한 상황
하지만 판사는 그간의 현산과 미술관 측이 오간 자료를 토대로 작품 ‘평형 <Balance>’ 이전에 대해서는 ‘열린 결말’을 제시했다. 청주지방법원 박성민 판사(판결 2022년 6월 16일)의 판결문에 따르면 “건물의 인도와 가집행을 할 수 있다. 피고는 원고에게 ‘해체 및 설치공사’를 위해 이 사건 건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라는 것.
따라서 현산 측은 ‘평형 <Balance>’작품을 이전 설치해야 한다. 그 사이 미술관 측은 청주시 고은리 106번지 서경덕 관장이 개인 소유하고 있던 땅을 이전부지로 내놓았다. 또 2021년 6월 30일 청주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미술관’으로 받아놓은 상태다. 서 관장은 “현재 ‘평형 <Balance>작품’이 있는 건물 자체가 상하수도, 전기시설이 돼 있는 허가 건물이었다. 이전 설치를 한다면 그 조건을 맞춰줘야 미술관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 관장은 고은리 106번지에 ‘평형 <Balance>’작품 설치뿐만 아니라 윈도우 갤러리 등 소장품 등을 모아 ‘마을미술관’으로서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는 이미 미술관 허가를 위해 용도전환 및 측량 설계 등 사비 8000만원 이상을 지불한 상황이다.
문제는 ‘평형 <Balance>’작품을 이전 설치하기 위해서는 대지 정리 공사 및 건물 착공, 준공 인허가 등이 남아있다. 이 비용 및 과정에 대해서는 양측이 협의가 안 된 상황이다. 따라서 이 일은 여전히 매듭이 지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산 측은 이에 대해 다른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현산 관계자는 “2020년 교환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2021년 6월까지 건물 양도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벌써 1년이 초과된 상황이라 더는 미룰 수 없다. 대지 정리 공사 및 건물 착공, 준공 인허가는 사업주인 미술관이 해야한다.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도 않은 대지 정리 작업을 현산이 해야 할 의무는 없다. 대지정리작업을 미술관 측이 하면 평형 <Balance>작품 이전 설치 및 콘트리트 장독대, 옹벽, 아나방 등은 약속대로 설치하겠다”고 설명했다.
서 관장은 최근 국민신문고에 이 같은 진행과정에 대해 알렸다. 그는 “고은리에 미술관이 세워져도 개인적으로 얻는 유익은 없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정말 ‘마을미술관’이 될 것이고, 그래서 어렵게 허가도 받았다. 대지 정리 비용을 미술관 측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공간에 대해 시에서도 건립 지원뿐만아니라 지금처럼 양측이 의견이 엇갈릴 때 중재도 필요하다. 개인이 대기업과 수년째 싸우면서 많이 지쳤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