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판위에 핀 신문쟁이의 인간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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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위에 핀 신문쟁이의 인간승리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6.1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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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 신능수씨, 연매출 100억원 사업가 되기까지…

과거 월급쟁이 아픔 떠올리며 “절대 악덕 기업주는 되지 말자”
옛 신문사 동료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위로 자리도 마련

   
▲ 신능수씨의 성공담은 경제난 속에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다. 사진은 (주)정대프렌트가 생산하는 LPG저장탱크와 신능수 대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선 재미있다. 그 재미가 인간승리의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반전(反轉)의 짜릿함을 안기기도 한다. 성공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에 천착한다면 듣는 이에게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에 오르는 감동을 주겠지만, 단순히 성공이라는 결과만을 얘기한다고 해도 짜릿한 스릴은 어쩔 수 없다.

신능수씨(48)를 대하다 보면 바로 이두가지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연매출 100억원대의 기업가로 변신한 사연은 누가 들어도 기가 막히다. 그의 성공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신문쟁이가 일단 현직을 떠나면 별볼일 없다는 신문업계의 통념을 깨고 스스로 성공신화를 일궈냈기 때문이다.

LPG 소형 저장탱크를 전문 생산하는 (주)정대프렌트(진천군·읍 신정리 진천농공단지내) 오너인 신능수씨는 원래 극심한 노사분규 끝에 얼마전 문을 닫은 구 충청일보 경리부 직원이었다. 여기에 84년 입사해 꼬박 12년간 청춘을 바쳤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심각한 노사분규와 구성원들간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었고 결국 직장을 떠나게 된 그는 이후 2년여간 다른 신문사를 전전했지만 얻은 것은 삶의 상실감 뿐이다.

그러나 이 때까지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관념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대개 지방 신문업계 종사자들은 퇴직하거나 나이가 들면 초라해지기 십상이다. 일단 현직을 떠나게 되면 명예로운 새삶을 준비하기는 커녕 마땅한 대안을 구하지 못하고 업계 주변을 맴돈다든가, 아니면 먹고살기 위해 동가식 서가숙의 전전긍긍하는 모습들을 보여 온 것이다. 때문에 이의 타파가 신문업계의 숙원 아닌 숙원으로 여겨지던 차에 신능수씨의 변신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파천황과도 같은 파격으로 다가왔다.

신대표가 처음 (주)정대프렌트와 인연을 맺은 것은 98년 10월이다. 언론사 퇴직후 어찌 보면 예견된 인생유전을 이어 가던 차에 우연한 기회로 3개월 전 설립된 이 회사의 경리부장으로 입사한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전 직장의 전공을 살린 것이기 때문에 아주 바람직한 전직인 셈이었다. 그러나 회사 생활 2년쯤이 지나면서 신대표의 심중엔 뭔가가 솟구쳤다. 회사의 주력 상품인 가스 저장용기에 대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그는 “몸서리칠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이 때부터 시작한 것이 영업이다. 영업을 하면 할 수록 가스용기의 미래 사업성에 대한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고, 결국 2002년 사표를 던진 그는 ‘만상’이라는 사업자를 내고 이 제품의 총판사업에 뛰어 들었다. 정대프렌트가 생산하는 LPG 소형저장탱크는 산업체나 대형건물 등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때문에 업계의 난립 내지 출혈경쟁이 예상되지만 상황은 정 반대다.

안전이 생명인 가스관련 제품인 관계로 제작에 있어 정밀 수작업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기술도용이나 신규사업 진출이 결코 녹록치가 않다. 현재 전국에 유사성격의 업체가 5곳 정도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적인 경쟁업체는 단 한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정대프렌트가 전문 생산하는 3톤미만(가스 용량기준) 소형저장탱크는 시장점유율 70% 이상을 장담할 정도로 거의 독점이나 다름없다.

   
SK, E1(구 LG), 쌍용오일, 가스협회 등 대기업의 납품은 거의 정대프렌트가 도맡고 있다. 정대프렌트는 3톤미만 소형탱크 뿐만 아니라 가스용량 십수톤에 달하는 대형탱크와 차량탑재 벌크로리까지 생산품목을 넓혀감으로써 이미 이 업계에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해 놓고 있다. 이러한 사업성을 미리 예측한 신대표가 과감히 영업전선으로 뛰어들어 총판사업을 벌인 것은 그의 잠자던 사업수완을 일깨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전국의 거래처를 휘젓고 다니며 큰 돈을 벌었고, 이에 힘입어 어느 시점부턴 임원 신분으로 회사의 실질적 경영주 역할을 하더니 올해 3월 마침내 대표이사로 공식 취임했다. 영업의 특성상 어느 땐 술취한 상태로 서울 부산 제주를 하루만에 오갔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의 결과물이다. 이 회사는 현재 신능수 대표의 완전한 100% 1인 주주 체제다.

조그만 중소기업 수준의 회사가 갑자기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역시 신대표가 경영을 책임지기 시작한 2003년부터다. 2003년 26억8천만원이던 연 매출액이 2004년 35억3천만원으로 뛰었고, 다시 2005년엔 66억원으로 급상승했다가 올해 일약 117억원으로 비상한 것이다. 이 회사의 저력은 또 있다. 남들은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정대프렌트는 내년도 1년 작업물량을 이미 100% 확보해 놓은 상태다.

 지금도 주문이 밀려 생산부 직원들은 매일 밤 9시까지 야근한다. 그동안 쌓아 온 신뢰가 이런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인수 당시엔 불과 1공장, 1000여평의 소규모 공장이었는데 지금은 4000여평의 부지에 제 2, 제 3의 공장으로 불어난 상태다. 환경 및 가격요인으로 산업체의 연료가 끊임없이 경유에서 LPG로 전환하는 추세이고 보면 저장탱크의 수요도 앞으로 무궁무진하다는 게 신대표의 확신이다.

지금의 정대프렌트를 가능케 한 것은 물론 신대표를 비롯한 전직원들의 하나된 마음이다. 그리고 그 ‘키’는 신대표가 쥐고 있다. 과거 경영이 투명하지 못한 직장에서 겪은 뼈저린 경험들, 그리고 한 때 한솥밥을 먹던 신문사 동료들이 그릇된 자본력에 의해 대책없이 거리로 쫓겨나는 현실, 이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느끼고 지켜 봤다는 그의 경영관은 확고하다. 과거 직장생활의 아픔이 “죽어도 악덕기업주는 되지 말자”는 신념을 자연스럽게 심어주고 있다는 것.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그는 대표이사 취임과 함께 형편이 여의치 않은 과거 신문사 동료와 친구를 채용하는 의리를 보였다.

틈만 나면 75명의 직원에게 한배를 탄 운명임을 강조하며 회사경영 공개 등 스스로가 그 구체적 방안을 실천함으로써 단단한 믿음을 준다. 얘기 내내 직원들의 처우개선과 후생복지를 특별히 강조한 신대표는 지금도 계약된 연봉 외 3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있다. 때문에 이 회사는 공장 전체가 6㎜~13㎜의 거대한 철판을 다룸으로써 여기 저기 쇳소리가 나는, 마치 어수선한 큰 건설현장을 연상시키지만 직원들의 표정은 누가 봐도 밝다.

여유가 생기면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꼭 하고 싶다는 신대표는 오는 12월 15일 뜻깊은 이벤트를 벌인다. 극심한 노사분규와 해직의 아픔을 갖고 있는 옛 충청일보 동료들을 모두 초청해 위로의 자리를 갖기로 한 것이다. 과거 동료들이 자신처럼 모두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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