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군 국비사업, 문체부 ‘명칭 변경’ 문제로 무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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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 국비사업, 문체부 ‘명칭 변경’ 문제로 무산 위기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3.06.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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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린고비 사업, 2020년 8월 변경 승인은 받아…이제와 원위치로 회귀?
권근 종중 “명칭 등에 호 ‘양촌’ 삽입돼야” 고수, 부지 매도 의사 철회
충북 음성군 방축리 능안마을에 소재한 권근 삼대묘 아래의 사당 전경. /사진=충청북도 공식 블로그.<br>
음성군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 부지로 변경된 권근 3대묘 사당 전경. 하지만 명칭 변경 등을 놓고 문체부와 종중의 이견으로 이곳에서의 사업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진=충청북도 공식 블로그.

속보=충북 음성군이 국비를 확보해 추진하던 충청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의 ‘명칭 변경 반대’로 무산 위기에 봉착 했다.<2020년 11월 20일자, 음성군 ‘자린고비 청빈마을’ 사업 명칭 바꿔야>

관련 자료를 보면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에 선정된 음성군의 ‘자린고비 청빈마을’ 사업은 2020년 8월 7일 문체부의 사업계획변경 승인을 받았다. 당시 이 같은 사실을 음성군이 음성군의회에 보고하면서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2년 10개월 가까이 지난 현재, 해당 사업은 ‘명칭 변경’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난관이 되고 있다.

문체부는 당초 사업과 맞지 않아 명칭 변경이 불가하다는 입장이고, 부지를 매도하기로 결정했던 안동권씨 종중은 사업 명칭에 권근의 호인 ‘양촌’을 삽입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매도 철회 의사를 밝혔다. 군은 종중의 의견을 반영해 사업명칭을 ‘양촌유교청빈마을’로 변경해 줄 것을 건의했지만 문체부는 반대했다.

군에 따르면 명칭에 ‘양촌’ 삽입도 어렵고, 사업 내용에서는 청빈영상문화체험관→양촌유교문화관 불가, 자린고비마당→전통정원마당 검토필요, 자인정→양촌정 변경 가능 등이 문체부의 입장이다. 이와 같은 변경 요청 내용은 종중의 주된 의견인 것으로 파악됐는데 기존 변경계획안 보다 더 바뀐 내용이다.

음성군 난감‧주민 반발 심화

앞서 군은 이곳에 ‘자린고비 청빈마을’을 조성해 청빈낙도를 실천한 조륵 선생의 자인고비(慈仁考碑) 정신과 조선전기 대학자 권근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선비정신을 기린다는 계획이었다. 아울러 청소년 경제교육체험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방침도 밝혔다. 이곳에는 청빈영상체험실, 자린고비마당, 자인정, 안빈낙도 정원 및 산책로 등을 조성할 예정이었다. 군은 가족단위 관광객 유치가 가능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군이 사업을 변경하게 된 이유는 조륵 생가의 소유권이 타인에게 넘어가고 새로운 주택이 건축됐기 때문이다. 조륵의 생가는 금왕읍 삼봉리이고, 권근 3대묘는 생극면 방축리 능안 마을로 13km 떨어져 있다. 종중은 권근의 호를 붙여 ‘양촌 3대묘’로 부른다. 변경 승인된 해당 사업은 조륵 선생 이야기에다 권근 선생 이야기를 포함시키면서, 해당 부지를 권근 3대묘 일원으로 변경하는 게 핵심이다.

사업이 불투명하다는 소식에 생극면 사회단체가 일제히 음성군을 성토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자료에 따르면 권근은 공자와 맹자의 유교를 계승한 성리학에서 이기심성(理氣心性)론을 정립해 군주 및 지배층의 덕치(德治)·예치(禮治)·인정(仁政)·왕도(王道)를 실천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밝혔다. 이는 16세기 후반 이황·이이 등 주요 학자들 연구의 중심 주제가 되는 등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40권에 이르는 대표 작품집인 양촌집 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겨 유교를 연구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권근 3대묘에는 그와 함께 아들 권제, 손자 권람이 묻혀 있다. 이곳은 왕릉 수준의 묘역과 사당, 자료 등 풍부한 터전을 갖추고 있다.

음성군은 이와 같은 자원을 반영해 사업변경을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사업변경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사업 용역 관련 전문가와 음성군, 종중 관계자 등의 현장 방문 실사를 거쳐 문체부는 사업변경 승인을 허가했다. 그럼에도 명칭 변경은 불가하다는 게 문체부의 기본 입장이다.

송강‧추사 호는 사용하는데

그런데 해당 사업부지가 권근 3대묘 일원 4만2706㎡ 면적인데, 이 중 권씨 종중 땅이 3만6465㎡(85.4%)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군유지 2822㎡(6.6%), 사유지 2653㎡(6.2%), 국유지 766㎡(1.8%) 순이다. 사업이 정상 추진되려면 종중 땅을 군이 매입하는 등 종중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종중의 조건은 사업 명칭에 ‘양촌’이 들어가야 하고 주요 시설에도 관련 명칭이 붙기를 바란다. 이런 상충된 입장이 해결되지 않아 권근 3대묘 일원에서의 청빈마을 사업은 결국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6월 들어 뒤늦게 이런 소식을 접한 생극면 주민들은 사회단체장들 중심으로 반발 목소리를 외치고 있다. 이장협의회와 주민자치회, 체육회 등 6대 회장단은 물론 전체 마을 이장들도 힘을 합치면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있다. 이미 음성군과 조병옥 군수를 성토하는 현수막이 생극면 내에 여기저기 걸렸다. 이들은 2월초에만 해도 조 군수가 직접 해당 사업이 정상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면서 기만이라는 비판까지 하고 있다.

단체장들은 조 군수의 만남 요청도 거부하면서 비상대책위 공식 출범과 동시에 군청 앞과 타 읍면지역에도 관련 현수막을 게시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생극 주민들은 140억에 가까운 사업을 다시는 맞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2년 반 전에 확정된 사업이 무산된다는 소식에 배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소통 부재가 부른 정치적 상황까지 이른 셈이다.

군은 사업을 당초 부지이던 금왕읍 삼봉리 조륵 선생 생가마을 주변으로 다시 추진할 뜻을 밝히고 있다. 생가는 없어졌지만 인근 임야를 사들여 최초 사업계획대로 조속히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생극면에는 대체 사업을 발굴할 계획이다. 생극면 주민대표들은 음성군을 성토하는 비대위 구성에 속도를 내고, 음성군은 이를 달래기 위한 묘책에 분주한 양상이다.

종중‧문체부, 한발씩 양보해야

이번 사태와 관련해 문체부 관계자는 “애초부터 명칭 변경은 불가한 입장이고, 음성군이 명칭 변경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온 것도 없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해 11월과 올해 4월 등 구두로 건의한 바는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문체부 관계자는 “인물의 호가 명칭에 들어가는 사업은 없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관련 사업도 그랬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체부의 명칭 변경 불가에 대한 이견도 있다. 실제 해당 자료를 보면 타 지역의 동일한 유교문화권 사업에서 선인들의 호를 사용한 사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천군의 송강문화창조마을 사업에서 ‘송강’은 정철의 호다. 또한 예산군의 추사서예창의마을 사업도 있다. 추사는 서예의 대가 김정희의 호다. 지금이라도 음성군과 종중, 문체부, 주민대표, 국회의원, 군의원 등이 조속히 한 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2020년 사업변경 취지대로 합의안을 도출하는 혜안이 요구된다.

당사자격인 음성군과 문체부, 종중 모두의 책임이 크고,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 할 의원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15일부터 23일까지 음성군의회 제357회 정례회가 개최된다. 이번 회기 중 해당 사업과 관련한 공유재산 취득 변경안이 의결되면, 사업은 사실상 생극면 방축리에서 금왕읍 삼봉리로 최종 재변경 결정되는 셈이다.

삼봉리로의 회귀도 시간이 촉박한데다 필수적 절차인 토지 매입 및 용역 변경 등이 무리 없이 해결될지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종중과 문체부가 한 발씩 양보해야 사업의 좌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전망이다.

한편 음성군은 해당 사업의 기본용역 및 실시설계 용역비로 5억600만원을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업은 조병옥 군수의 공약으로 총사업비 139억1000원(국비 54억5500만원, 도비 10억9100만원, 군비 73억6400만원)이 소요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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