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유적 ‘큰용굴’ 정밀조사 가능성
상태바
구석기 유적 ‘큰용굴’ 정밀조사 가능성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7.05 08: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0년 일대 매입한 토지주 “유적지라면 발굴해야”
1982년 인근 두루봉동굴과 함께 부분조사 후 방치
외래암질 제조 뗀석기…‘큰뿔사슴‧동굴곰 뼈’ 주목
김성동 씨가 저수지를 매립해 밭을 만들려고 매입한 폐광산은 알고 보니 구석기 유적지인 큰용굴이었다. 사진=이재표 기자
김성동 씨가 저수지를 매립해 밭을 만들려고 매입한 폐광산은 알고 보니 구석기 유적지인 큰용굴이었다. 사진=이재표 기자

김영환 충북지사가 1년 전 문의문화재단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석기시대 사냥터였으며, 축제의 장이었다고 묘사한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일대 구석기 유적 가운데 훼손을 면한 큰용굴 유적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보존할 실낱같은 가능성이 열렸다.

2020년 전 석회석 폐광으로 방치된 큰용굴 일대 약 48500를 사들인 김성동 씨 형제가 그 가치를 알고 토지이용 계획을 바꿀 수도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김성동 씨는 60m를 수직으로 파 내려갔던 광산 개발이 중단된 이후 30m 수심의 커다란 호수가 생긴 큰용굴 유적지 16500를 흙으로 메운 뒤에 임야나 밭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김 씨는 매입 당시에 이 토지가 큰용굴 유적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큰용굴은 3~4만 년 전 구석기시대 인골인 흥수아이가 발견돼 교과서에도 나오는 청주 두루봉동굴과 불과 임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두루봉동굴은 1976~1983년 발굴과 석회석 채굴이 동시에 이루어져 10여 개에 이르던 동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두루봉동굴이 있던 자리는 지금도 지면에서부터 수직으로 파 내려가는 노천광산으로 100m 이상 깊이로 채굴이 진행되고 있다.


두루봉은 현재도 석회석 광산


김성동 씨는 두루봉동굴이 문의에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도 채굴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더구나 내가 산 땅이 두루봉동굴과 붙어있는 큰용굴 유적이라는 것은 웅덩이를 되메우기 위해 행위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공무원으로부터 지나가는 소리로 들었다고 밝혔다.

1983년, 구석기시대 인류 ‘흥수아이’가 발견된 두루봉동굴은 지금도 석회석을 채굴 중이라 유적의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다. 큰용굴은 두루봉유적이 있던 곳에서 임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사진=이재표 기자
1983년, 구석기시대 인류 ‘흥수아이’가 발견된 두루봉동굴은 지금도 석회석을 채굴 중이라 유적의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다. 큰용굴은 두루봉유적이 있던 곳에서 임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사진=이재표 기자

김성동 씨는 또 두루봉동굴이 사라졌더라도 그 자리에 두루봉동굴과 큰용굴 유적지가 있었던 곳이라는 푯말 정도는 세웠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어차피 저수지를 메우기 위해 허가를 받은 만큼 공사를 시작하겠지만 그 전에 전문가들과 현장을 확인해 유적은 보존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강조했다.

큰용굴이 있는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노현리 산60 일대는 청남대 가는 길 주변에 있다. 따라서 대청호 상수원 보호구역에 해당해 행위허가가 필요하다. 김 씨는 기존의 폐광에 자연환경 보전 숲과 우량농지를 조성하는 목적으로 허가를 받았고, 무려 71만여의 토사를 부어야 메워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20231월 착공해 2028430일까지, 준공에 5년여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씨는 어차피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임야나 밭 이외에는 일체 활용할 수 없는 땅이다. 전문가 조언을 받아서 유적을 지킬 수 있는 선까지만 저수지를 되메우겠다고 말했다.

큰용굴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부분조사가 이뤄진 1982년 이전에도 현장은 석회석 채굴이 이뤄지던 광산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서류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종 사업자는 W산업의 박 모 씨다. 박 씨는 1984~2002년까지 채굴을 허가받았으나 사업체 부도 이후 세상을 떠나면서 길이 120m, 80m의 웅덩이가 생겼다. 박 씨가 예치한 복구비는 16800만 원에 불과했지만 한국광해관리공단이 산정한 되메우기 예산은 무려 180억 원이나 돼, 2003~2004년 메우기 없이 안전 울타리를 설치한 것만으로 복구준공을 내준 상태다.

한국광해관리공단은 2003~2004년 메우기 없이 안전 울타리를 설치한 것만으로 복구준공을 내준 상태다. 사진=이재표 기자
한국광해관리공단은 2003~2004년 메우기 없이 안전 울타리를 설치한 것만으로 복구준공을 내준 상태다. 사진=이재표 기자

김성동 씨는 되메우기 예산이 180억 원이나 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사업주가 죽은 상황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울타리 설치로 복구를 끝내려는 심산에 비용을 부풀린 의혹이 있다고 귀띔했다.


요 옆에도 동굴이 있다


김영환 지사는 1년 전 취임사에서 두루봉동굴에서는 코끼리, 동굴곰, 코뿔소 등의 흔적이 발견됐다면서 구석기인들은 이곳을 무대로 사냥을 했으며, 사냥에서 돌아와 흥겨운 춤과 노래로 그날의 기쁨을 함께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 지사는 또 동굴 안에서 진달래꽃이 발견되었으니 이는 당시의 인류가 꽃을 사랑하고 예술을 즐길 줄 알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U기업이 두루봉동굴에서 석회석을 채굴하고 있지만 1976~1983년 두루봉동굴 발굴 당시의 채굴업체는 한흥석회였다. 김흥수 한흥석회 전무가 광산에서 석기와 뼈 등을 발견하고 신고하면서 유적발굴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83년 발견한 구석기인(5세 전후 추정)에게 흥수아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김흥수 전무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1976~1983년 이뤄진 두루봉동굴, 큰용굴 발굴조사를 이끌었다. 이 이사장은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눈물을 머금고 발굴조사를 마무리해야 했다”며 큰용굴 재조사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1976~1983년 이뤄진 두루봉동굴, 큰용굴 발굴조사를 이끌었다. 이 이사장은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눈물을 머금고 발굴조사를 마무리해야 했다”며 큰용굴 재조사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사진=이재표 기자

1976년 충북대에 부임하면서부터 두루봉동굴, 큰용굴, 작은용굴 발굴 전 과정을 이끈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지금처럼 문화재 보존을 우선하던 시절이 아니라 광산 소유주의 허락을 받아서 각서를 쓰고 발굴을 시작했다석회석을 채굴하다 유물이 나오면 업체에서 충북대에 알려주고 사나흘 정도 해당 지점에 대한 조사가 끝나자마자 발파해 하루아침에 흔적을 없애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유물이 발견될 때마다 성실하게 알려준 김흥수 전무에게 감사할 따름이고, 유적 보존 등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이다. 충북대 사학과 77학번으로 입학과 동시에 발굴에 참여했던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1980년 들어 다목적댐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문화재 보존에 관한 법이 정비되기 시작했다문의지역 구석기 유적발굴은 법이 정비되는 과도기에 이뤄지다 보니 규정이 느슨해서 조사가 이뤄진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큰용굴은 두루봉동굴 발굴과정에서 주민들이 저기에도 동굴이 있다고 알려주면서 존재를 확인하게 됐다. 이융조 이사장은 ○○일보 기자가 먼저 뼈를 찾아왔다. 두루봉동굴 조사를 마무리하던 시점인 1982년 큰용굴에 대한 간단한 부분조사만 이뤄졌다고 회고했다.


큰뿔사슴뼈규암석기 주목할만

 

큰용굴이 발견된 지점은 현재 울타리 출입구에서 10시 방향에 보이는 절개된 암벽에 있다. 석회석 채굴에 사용했던 임도에서 2,3m 정도 높이에 있으며, 임도가 물에 잠기지 않아서 지금도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돌이 무너져내렸던 만큼 안전을 먼저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융조 이사장은 당시 커다란 바위가 굴러떨어져 몰살당할 뻔한 위기가 있었다절개한 면에 박혀있던 동물 뼈와 석기가 임도 옆 배수로에 많이 떨어져 있었지만 제대로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큰용굴에서 발견된 동굴곰 턱뼈와 뗀석기들. 석기는 외래암질로 제조한 것이라 주목을 받는다. 왼쪽 위부터 몸돌, 긁개, 왼쪽 아래 찍개, 망치.
큰용굴에서 발견된 동굴곰 턱뼈와 뗀석기들. 석기는 외래암질로 제조한 것이라 주목을 받는다. 왼쪽 위부터 몸돌, 긁개, 왼쪽 아래 찍개, 망치.

우종윤 원장도 두루봉동굴이나 큰용굴 모두 상당 부분 절개가 이뤄졌기 때문에 짧은 동굴은 이미 사라져 버린 상황이었다동굴 입구가 어딘지, 주 동굴과 가지() 굴로 어떻게 연결돼있는 것인지는 당시에도 파악할 수 없었다고 부연했다.

그저 줍는 수준이었지만 큰용굴에서 찾아낸 유물은 예사롭지 않다. 이융조 이사장은 동굴곰 한 마리를 복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곰뼈를 찾아냈다적어도 세 마리 이상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또 큰뿔사슴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며 이에 비추어 유적의 연대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큰용굴에서는 동굴곰과 코뿔소, 큰뿔사슴 등의 뼈가 발견됐다. 사진은 동굴곰 턱뼈.
큰용굴에서는 동굴곰과 코뿔소, 큰뿔사슴 등의 뼈가 발견됐다. 사진은 동굴곰 턱뼈.

찍개와 긁개, 몸돌, 망치 등 큰용굴의 뗀석기들도 두루봉동굴과 비교할만하다. 우종윤 원장은 큰용굴의 석기들은 이 주변에는 흔치 않은 규암이나 석영 등 외래암질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두루봉동굴의 석기와 분명한 차별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큰용굴, 작은용굴로 이어져


어찌 됐든 40년 전 제대로 조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유주 김성동 씨가 조사를 먼저 제안함에 따라 본격적인 현장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우종윤 원장은 그동안 두 차례 정도 재조사와 발굴을 추진했지만, 토지주의 승낙을 받지 못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우 원장이 거론한 토지주는 W산업 박 모 대표의 유족이거나 김성동 씨에게 땅을 넘긴 전 소유주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융조 이사장은 본격 발굴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보였다. 이 이사장은 2007년 충북대에서 정년 퇴임한 이후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을 설립했으며, 고교미술사학과 명예교수로 학술연구를 이어왔다. 이 이사장은 2022년 충북대 명예교수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 암사동의 선사유적 공원
서울 암사동의 선사유적 공원

이융조 이사장은 두루봉이든 큰용굴이든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데다 규정마저 느슨해서 눈물을 머금고 발굴조사를 마무리해야 했다면서 그래도 형태가 남아있는 큰용굴을 정밀 조사한다면 제대로 살펴볼 것이 많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이사장은 실제로 큰용굴은 구조적으로 산 너머에 있는 작은용굴과 연결돼있을 가능성이 크다작은용굴의 동굴 벽면이 매끄럽다는 점에서 동굴벽화가 있을 수도 있고, 사람 뼈가 나올 줄도 모른다고 예를 들었다.

이 이사장은 큰용굴을 제대로 발굴한다면 어느 정도 웅덩이를 메운 상태에서 선사공원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이사장은 주변에 있는 늪지 흔적은 이곳이 코뿔소의 낙원이었겠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코뿔소나 코끼리, 동굴곰 등의 형상을 복원해 전시한다면 얼마나 좋은 볼거리가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