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기 위해서 당신들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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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기 위해서 당신들을 죽인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9.08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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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사회의 분노와 불안 ‘망상 범죄’로도 이어져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와 같은 지도자’들 도처에
최영락 온유한정신과원장 “상담해서 낫는다면 좋겠다”
지난 7월 수해와 관련해 대통령실과 김영환 충북지사의 메시지는 “현장에 있었다고 달라질 게 있었는냐”는 것이었다. 사진은 2022년 행사장에서 함께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환 지사. 사진=뉴시스
지난 7월 수해와 관련해 대통령실과 김영환 충북지사의 메시지는 “현장에 있었다고 달라질 게 있었는냐”는 것이었다. 사진은 2022년 행사장에서 함께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환 지사. 사진=뉴시스

각자도생(各自圖生)은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아니다. 그렇다고 신조어도 아니다. ‘제각기 살길을 찾는다는 이 말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나온다. 임진왜란 당시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갔던 선조 재위 27(1594) 96일에 기록돼있다. “왜인이 동래, 부산, 김해에 침입하니 백성들에게 미리 알려 각자도생하게 하라는 내용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각자도생하는 대한민국을 자학하는 신조어가 헬조선이다. 헬조선의 원조는 선조 재위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백성들에게 미리 알려라는 대목에서 지금보다 상황이 외려 낫다는 평가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국가급 대규모 재난에도 최고 책임자가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국민은 기시감(旣視感)에 치를 떨고 있다.

202211, 국회 운영위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실 산하) 국정상황실은 대통령 참모조직이지 대한민국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한복판인 이태원에서 축제 인파가 몰려 159명이 압사한 사건에 대한 변명이었다. 대통령실은 국민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책임지지 않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을 때도 청와대는 재난 컨트럴 타워가 아니다라고 변명했던 것에서 청와대만 대통령실로 바뀌었을 뿐이다. 재난은 한두 부처가 해결할 수 없다. 사건이 터지면 숨돌릴 틈도 없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얘기는 우리는 모르니 각자도생하라는 선언인 셈이다.

지난 7월 수해와 관련해 현장에 있었던들 뭐가 달라졌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은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나토에 갔던 윤석열 대통령이 수해 상황에서도 귀국을 미루자 당장 대통령이 서울로 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716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발언이 나왔다.

충북도민들은 불과 나흘 뒤에 도지사 입에서 주어만 바뀐 같은 발언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오송지하차도 침수 참사 닷새 뒤인 720, 분향소에 찾아간 김영환 지사가 뒤늦은 사과 뒤에 거기(수해 현장)에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사족을 단 것이다.

국민들이 더욱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와 갈라치기 때문이다. 철근 없는 순살 아파트가 무너져도, 세계 잼버리가 엉망진창이 돼도 모두 전 정부 탓이다. 심지어는 7월의 수해도 “4대강 보 해체를 결정한 전 정부 때문이라고 했다. 해체를 결정했을 뿐 실제로 해체한 보는 단 한 개도 없는데 말이다.

특정한 대상을 악마화하는 갈라치기도 도를 넘어 국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싸잡아 건폭이 됐고, 화물연대는 물류대란의 원흉이 됐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절대다수의 국민을 악마화하는 것이 힘에 부치니 야당과 언론이 괴담과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갈라치기에 앞장서고 있다.

각박한 현실은 국민의 성정을 날카롭고 모나게 만들고 있다. 흔히 묻지 마 범죄라고 부르는 이상동기범죄가 늘어나거나 SNS를 통한 범죄예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사실 이상동기범죄와 허위 범죄예고는 완전히 다른 유형이지만 같은 원인에 뿌리를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민우 청주 청원경찰서 형사과장은 형사과에서는 물리적인 가해가 있는 범죄만 취급한다. 우리 과에서 이상동기범죄로 수사한 것은 내 기억에 없다. 특별한 시비가 있어서 범죄로 이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가해는 없어도 허위로 범죄를 예고한 사건은 충북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실제로 충북에서 831일을 기준으로 올해 살인·흉기 난동 등의 범죄예고 글을 올려 도내에서 검거된 인원은 미성년자 4명을 포함해 모두 열두 명이다. 이들은 실제로 살인할 생각은 없었다”, “장난 삼아 그랬다등 범행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고 말하지만, 경찰은 모두 협박 혐의를 적용했다. 살인 등 범죄예고 글 게시는 협박죄(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로 처벌받을 수 있다.

최영락 온유한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스스로 삶을 증명하기 위해 사회적 성인식을 치러야 하는데 그럴 만한 장소나 기회를 모두 잃어버렸다. 청소년들은 놀이조차 빼앗겼다면서 안타깝지만 장난이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영락 원장은 또 코로나 3년 동안 병원 환자는 두 배 이상 증가해 3개월 이상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그런데도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들은 열악한 처우 때문에 현장을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의 병원에는 오송 침수 참사의 피해자들도 찾고 있다. 최 원장은 상담해서 곧 나을 수 있는 상처라면 뭐가 문제겠냐며 안타까워 했다.

저는 20대 청년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소심하고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친구가 별로 없었고 그마저도 친밀감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특이하고 이상한 놈이라는 반응을 보여 저도 더 얘기하기 싫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가 3년 전부터 어떤 모종의 집단이 저를 살해하려고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 원장이 그동안 상담과 진료를 통해 구성한 망상의 유형이다. 결론은 내가 살기 위해서 죽인다는 자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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