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자 여성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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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자 여성독립운동가
  • 양정아 기자
  • 승인 2024.02.29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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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인의 충북 여성독립운동가 발굴
저평가된 서훈…그마저 여성은 3.68%뿐

독립운동에 목숨 바친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아침, 중국 하얼빈 역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3발의 총탄을 명중시켜 그의 숨통을 끊었다. 총격 후 체포될 때 큰 소리로 국제사회를 향해 “코레아후라(大韓萬歲)!!”를 세 번 외쳤다. 이듬해 2월 안 의사는 뤼순(旅順‧여순)에서 거의 매일같이 재판을 받았다. 당시 신문기사에 실린 재판 내용을 한글 필사본으로 제작한 최고(最古)의 <大韓忠義錄(대한충의록)>이란 단행본이 충주 ‘우리한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2022년 8월 이 자료를 분석해 <안중근 공판기록 한글필사본 ‘大韓忠義錄’의 자료적 성격과 특징>이란 특별한 논문도 발표됐다. 대한충의록은 기사문과 달리 전기소설 형식으로 저격 순간 등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선대들의 목숨 바친 독립운동이 꺼지지 않는 들불처럼 이어져 해방을 이룬 것이다.

문화해설사가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에서 운동가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화해설사가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에서 운동가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정부로부터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훈포장을 수여받은 전국의 독립유공자는 2023년 11월 기준 1만7915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은 660명으로 전체 유공자의 3.68%에 불과하다. 작년부터 늘어나긴 했으나 여전히 적은 이유는 여성들이 남성 독립운동가를 지원했던 활동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북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여성 독립운동가는 박재복, 신순호, 어윤희, 오건해, 윤희순, 임수명, 연미당, 박자혜, 신정숙, 이화숙, 김수현, 민금봉, 민인숙, 신창희, 이국영, 홍금자, 가네쿠 후미코 등 17인이다.

그 중 가족의 동의를 받아 10명의 흉상을 제작해 전국 최초로 여성 독립운동가 전시관을 조성해 전시 중이다. 이를 통해 충북 여성독립운동가의 삶과 발자취를 들어봤다.

신순호와 오건해의 두 모녀 독립운동가의 흉상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오건해와 신순호, 두 모녀 독립운동가의 흉상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모녀 독립운동가, 오건해와 신순호

특히 오건해와 그의 딸 신순호의 이야기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잘 보여준다. 오건해는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녀의 딸 신순호는 그녀의 발자취를 이어받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들의 삶은 독립운동가 가족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오건해는 1894년 충북 청주시 보성 오씨 집성촌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편 신건식 선생과 결혼 후 중국으로 이주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꾸려나가며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힘썼다. 사위 박영준의 회고에 따르면 “독립운동가치고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독립운동가들의 지원에 힘썼다. 또 한국혁명여성동맹을 창립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난 신순호 선생은 부모인 신건식, 오건해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가의 길을 자연스럽게 걸었다.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서 들어갔다. 1940년 '한국광복군'에 입대해 활동했다. 그 뒤에도 임시정부 요직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신건식·오건해 부부는 그들 자신이 독립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딸 신순호, 사위 박영준, 형 신규식, 조카 신형호, 사돈 박찬익 등 가족이 모두 독립운동에 나선 명문가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는 남성이다. 이들은 활동하면서도 가정을 가지며 생활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뒤에는 함께 독립운동을 지지해 주고 뒷받침하던 아내들이 있었고 그들의 자식인 딸이 있었다. 신순호의 가족 사진은 독립운동가들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신순호 개인의 업적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 집안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도 한말 최초 여성 의병장 윤희순, 만세운동의 투사 어윤희, 단재 신채호의 동지 박자혜, 신팔균 장군의 동지 임수명, 독립자금 모집의 주역 이화숙, 중국 여성 독립운동단체 통합의 주역 연미당, 여자 광복군 신정숙, 노동자들의 항일의식을 깨운 박재복 등 독립에 대한 열망은 남녀의 차이가 없다.

기록되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

정부에서 수여하는 건국훈장 서훈등급은 1등급 대한민국장부터 5등급 애족장까지 5개 등급으로 나뉜다. 포상은 수량적으로 확인되는 자료로 독립운동 활동기간 및 수감 기간 등에 따른 기준이다.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으려면 근거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자료가 없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많다.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의 이미희 문화해설사는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애족장이나 애국장 등의 4등급 또는 5등급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활동 기간은 훨씬 더 긴데도 공적보다 낮은 등급의 훈장이 수여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이분들은 다행히 우리에게 알려진 사례지만, 여성 독립운동가 중에는 기록에 남지 못한 많은 분이 있다"라며 "이들은 독립운동 활동에 참여했으나 근거 자료가 부족해 독립운동가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들의 사연도 전했다. 이에 따르면 한 관람객은 "우리 시어머니는 누워서 주무시지 못했다. 독립운동을 하시고 하도 고문을 많이 당해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시어머니는 사진도 없이 그냥 얘기만 남아있어서 독립운동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를 찾거나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람객은 "외할머니 다락에 광목으로 된 피 묻은 태극기가 2개 있었다. 어렸을 때라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지 못했다"며 "이제와 돌이켜보니 어떤 사연이 었는가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름 없이 사라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수는 무시되거나 간과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은 독립운동 활동에 참여했으나 근거 자료가 부족해 독립운동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역사적인 위치와 업적을 재평가하는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국가보훈처는 여성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미서훈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서훈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충북도 관계자는 "충북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발자취를 관람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에 문화해설사를 배치했다"며 "여성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이어가는 탐방로 4곳을 조성했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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