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날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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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날을 기념하며
  • 김송이 아트큐레이터, ㈜일상예술 대표
  • 승인 2024.03.2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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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위해 시위할 때 외친 말이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12시간~14시간씩 일을 해야 빵을 얻을 수 있던 여성들은 기본적인 권리도 갖지 못한 채 고된 노동현장으로 내몰려야 했다.

1908년의 여성인권 시위의 결과는 한참 시간이 흐른 1975년이 되어서야 빛을 볼 수 있었다. 유엔이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한 것이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이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여성은 사회에서 배제되었었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도 어렵게 장벽을 뚫는 과정이 필요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프랑스 시민혁명(1789년) 직후 여성의 참정권을 외친 여성은 몇 달 지나 사형을 당했던 일이다. 이렇게 세계 여성의 날이 지정되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희생들은 계속되었다.

성차별과 여성혐오

지난 3월 8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는 “차별을 넘어 평등의 봄으로!”라는 슬로건을 들고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날이다. 오랜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없애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투쟁이었다. 여성들은 현실적으로 경력으로 인정받을 만큼 길게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임신과 육아라는 큰 산이 여성들의 경력을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승진에도 걸림돌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여성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이 사회적인 성차별은 받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 여성 혐오로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뜻밖에도 여성을 수없이 그린 화가가 있다.

에드가 드가(1834~1917년, 프랑스)-무대 위에서의 연습 (1878~1879년 경 작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에드가 드가(1834~1917년, 프랑스)-무대 위에서의 연습 (1878~1879년 경 작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 (1834~1917년, 프랑스)다.

드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자식의 재능을 알아보고 일찍부터 집안에 작업실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림을 배우는 것에서는 매우 자유로웠으나 가정안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의 외도를 눈감아주며 힘들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짙은 그림자 때문이었다. 이런 배경이 드가에게 여성 혐오를 심어주었다. 그러면서도 어렵게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며 안쓰러워했다. 에드가 드가 하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그림이 있다. 바로 발레 그림들이다. 드가는 파리 오페라 극장(현재 오페라 가르니)에서 발레를 본 후부터 발레 장면을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유명한 발레리나를 모델로 그리기도 했지만 이제 막 발레를 배우는 어린 소녀들의 그림이 훨씬 더 많다. 19세기에 발레를 배우는 소녀들은 대부분이 가난한 아이들이었다. 발레를 배우며 부자들의 눈에 띄면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루 14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공장 노동자로 사는 것보다 훨씬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이었다.

드가의 그림 <무대 위에서의 연습>이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 끝에서 거만하게 앉아 발레리나들을 바라보고 있는 남성이 둘 있다. 이 두 남성은 오늘 자신이 눈여겨 보고 있다가 맘에 드는 발레리나가 있으면 앞으로 그녀의 성장을 도울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공식적인 스폰서가 된다는 의미다. 당시의 발레 배우는 소녀들은 발레를 배운 고급 창녀가 되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발레 코치는 뚜쟁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니 발레 교실은 어느 정도 남성들의 유흥꺼리를 찾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드가는 이런 현실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냈다. 내용을 알지 못하고 그림만 본다면 그저 예쁜 그림에 불과하다. 드가는 여성들의 힘겨운 삶을 개선하기 위한 시위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여성인권을 위해 애쓴 화가다. 드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힘겨운 모습들은 흔히 발견된다. 발레 그림처럼 미화하지도 않아 적나라한 그림들이 다수 있다. 지금 그의 그림들을 평하자면 다분히 저널리즘적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발레리나들을 그리며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말하기도 하는 한편 자신의 재능을 적극 활용해 유망한 여류화가들을 돕기도 했다. 그중에 우리가 지금까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류화가로 모리조가 있다. 19세기 여류화가들은 실외에서 스케치하는 것이 금지됐다. 여자는 집안에서만 활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데다 여성이 화가라는 것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모리조의 그림들은 대부분 집안일을 하는 여성들이 그려져 있다.

차별받는 여성 노동 인권

19세기는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활동의 제약이 있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과정에 불합리한 여성의 노동은 큰 역할을 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들의 노동에 있어 성차별적 분위기는 만연해있다.

지난 3월 8일 약 3500명의 여성이 여성파업에 동참한 건 매우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삐딱한 페미니즘으로 번지지만 않는다면. 여성의 노동인권은 남성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건 인정하는 듯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교묘하게 차별받고 있다. 경단녀라고 불리는 여성들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들에 배치될 수밖에 없다. 육아에 전념하기 전의 이력들은 이미 오랜 과거의 경력이라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부지기수다. 때로는 스스로 너무 오래 전이라 다시 못할 거 같다며 먼저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이 지난 2018년에서야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에드가 드가가 작품으로 여성운동을 했고 이어 여류화가인 나혜석 선생이 여성운동의 선구자였다는 건 의미가 크다. 예술을 이해하고 창조하는 데에는 여성과 남성이 따로 없다. 예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아름다운 것이고, 누구에게나 삶을 더 진지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을 사회는 너무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다. 과거에도 지금도.

에드가 드가의 작품 <무대 위에서의 연습>을 다시 보니 발레리나들의 몸짓이 삶을 향한 치열한 아우성처럼 보인다.


 

김송이 :

아트큐레이터. 명화와 클래식 음악 해설가이며 아트인문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주식회사 일상예술 대표이자 수암골 네오아트센터 기획팀장으로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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