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자서전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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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자서전을 쓰다
  • 이기인 기자
  • 승인 2024.04.0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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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해교육 ‘스마트 라이프’ 돕다
문해교육 사각지대 외국인, 필요성 제기

 문해교육, 삶의 기록 [디지털 동행 수업]

문해교육은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능력만이 아니다.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생활능력 향상과 사회 활동 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교육이다. 대부분이 고령 학습자인 이들의 교육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당연히 누려야 할 교육이 되어야 한다. 청주시는 올해도 한글을 몰라 일상생활이 어려운 시민을 위해 ‘배움의 꽃을 피우다’라는 교실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2023년 이후 불 밝힌 문해교육 현장의 열기와 학습자의 소망을 살폈다. 만학에 도전하는 이들을 황혼을 응원한다. 나아가 새로이 주목받는 디지털 문해력 이해와 사각지대에 놓인 소수자의 문해력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이 이어지길 희망한다.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청주시 평생학습관의 문해교육 학습자들 모습.   /청주시

이범석 시장은 윤건영 충북교육감과 지난달 26일 청주시 임시청사에서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는 학교복합시설 활성화와 늘봄학교 추진을 위한 지역연계, 새로운 교육지구 구축, 찾아가는 예산학교 등의 협의를 위해 마련됐다. 시는 이번 정책간담회를 통해 지역교육발전을 위한 새로운 발전 방안을 모색했다. 시는 이를 계기로 평생학습이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해력(文解力)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힘’을 말한다. 넓게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와 같은 언어의 모든 영역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유네스코는 문해를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하여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하고 있다.

을 읽을 줄 아는 것과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은 다르다. 문맥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면 ‘소통’과 ‘공감’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문해교육 현장에서는 고령자의 이런 문제 해소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가평생교육진흥원이 편찬한 <성인문해 교과서>는 학습자에게 큰 도움을 주는 실용서이다. ‘교과서’로 불리는 이 책은 교실에서 활용도가 매우 높다고 담당자는 말한다. 학습자는 단계별로 모두 4권으로 구성된 교과서를 중심으로 배운다. 책의 겉표지에는 ‘소망의 나무’라는 제목과 함께 꽃잎이 무성히 날리는 그림이 있다.

디지털 배움터, 문해력 시대

치 “학습자의 봄날은 언제였던가”를 묻기에 충분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교과서 본문에는 ‘연필을 잡는 법’부터, 세모와 네모, 동그라미 그려보기 등 놀이성을 접목한 콘텐츠가 많아서 매우 흥미롭다. 한글을 배우는 기초 학습자에게는 더없이 친근한 놀이의 책으로 접근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문해력이 강조돼 이에 대한 학습도 흥미롭게 이뤄진다. 평생교육 학습관은 한글교육과 같은 기초수업을 뛰어넘어 디지털 사회를 반영하는 ‘플러스 창의적’ 체험수업을 추가로 진행하고 있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원이 공동출간한 <정보문해교육>에는 스마트폰 앱과 카카오톡 채팅하기 등 ‘스마트 라이프’를 위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글을 몰라서 외출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워 외출을 겁내는 이들을 위한 실용 안내서다. 시의 학습관은 2023년부터 ‘디지털 배움터’와 연계해 학습자의 눈높이에 맞는 ‘엄지톡톡 디지털동행’과 같은 수업을 이끌었다. 이 강좌는 호응이 좋아서 2023년 상반기 50강좌(668명), 하반기 30강좌(333명) 총 320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학습의 결과로 어르신들은 키오스크를 활용하여 병원예약과 같은 일을 스스로가 할 수 있게 됐다.

민선 8기 청주시장은 문화복지 분야의 공약으로 ‘평생학습 시스템 강화’라는 목표를 강조해 왔다. 따라서 ‘노인 정규교육과정 및 평생학습시스템 강화’에 대한 노력은 학습권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일으켰다. 시가 내세운 ‘평생학습’에 관한 공약 이행률은 2022년 100%, 2023년 100%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사각지대 문해교육, 이웃 외국인

빛 무지개 한글교실이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으로 초등 1단계 수업이 중복되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학습자의 선택과 진입평가를 실시하여 2025년부터는 초등 2단계부터 진단평가를 통해 학습자를 모집하겠다고 담당자는 전한다. 한편 평생학습관 분관 및 유관기관의 디지털 교육에 대한 수요증가에 따른 대비책으로 향후에는 오창호수도서관 및 기관연계 등을 통한 4개구 순환교육 운영으로 시민의 참여기회를 보다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청주에 주소를 둔 외국인의 국적별 등록은 2021년 기준으로 총 1만2349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중국 3879명, 베트남 1949명, 필리핀 487명, 일본 260명, 스리랑카 220명, 미국 194명, 인도네시아 138명, 파키스탄 88명, 방글라데시 92명, 캐나다 58명, 기타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4984명이다.

이들은 현재 시의 문해교육의 대상자로 편입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수업참가자 중에 외국인은 없다고 전한다. 이웃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문해력에 대해서는 다채로운 시선이 있을 것이다.

문해교육에 열중하고 있는 학습자.   /청주시

다문화가족센터에서 운영하는 다문화 한글교실 등으로 이들에게 닥쳐오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의아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청주시가 배포한 문해교육 모집 전단지에는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생활능력 향상과 사회활동 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문해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외국인이든 장애인이든 누구라도 편견 없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청주시 학력인정 문해교육 학습자의 첫 졸업생은 2026년이 될 것이라고 시 담당자는 말했다. 낙오자가 없다면 20명 모두는 고급문해력을 갖춘 실력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6년 이후 학습자들은 어르신, 고령자로 치부되어 불리기보다는 고급문해력자가 되는 셈이다. 삶의 여러 갈래에서 고단한 삶을 일궈온 ‘개인역사가’로 황혼을 지낼 수도 있다.

고급문해력, 황혼의 자서전

금보다 멋진 글솜씨를 자랑하는 ‘황혼의 자서전’ 속 주인공으로 거듭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커진다. 학습관 관계자에 따르며 학습자 중에는 남성고령자가 한 분도 없다. 남아선호 중심사회에서 성장한 이들은 배움에서 소외되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교육의 대상에서 멀었다. 여성이 절대적으로 많은 교실 풍경은 이런 가슴 아픈 시대의 환부를 드러내고 있다.

고령의 학습자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도 많다. 교육 실무자와 봉사자들 대부분은 만학도인 그들을 부모처럼 대하며 그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려고 애쓴다. 현장에서 만난 그들은 “배우지 못한 것은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니 제발 부끄러워하지 말고 지금처럼 당당하게 나서서 공부하라”고 오늘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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