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내면의 거울...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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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내면의 거울... 골목길
  • 이기인 기자
  • 승인 2024.04.17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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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원도심 골목길축제, [봄: 중앙동화] 27~28일 개최
2023 청주원도심골목길축제 [봄:중앙동화] 관객을 위한 공연 모습.   /청주시
2023 청주원도심골목길축제 [봄:중앙동화] 관객을 위한 공연 모습. /청주시

22대 총선결과표가 나온 날. 당선자와 낙선자는 또다시 현수막을 내걸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당선사례와 함께 석패의 마음을 채 삭일 시간도 없이, 시민유권자에게 띄우는 패자로서의 ‘마지막’ 인사였다.

훗날을 기약하는 현수막은 봄날의 햇살 아래로 곧 떨어질 운명의 목련꽃처럼 애처로운 시간에 묶인 모습이다. 청주시의 크고작은 골목은 지난 2주간 출사표를 던진 이들의 선거구호와 공약들로 시끌벅적했다. 반복재생 쏟아진 말들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사그라들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표를 달라고 애원하듯 골목을 순례한 총선 흔적은 오직 숫자를 내세운 공보벽보와 색색의 현수막이 있던 자리뿐이다.

목련꽃처럼
떨어진, 현수막

정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치러진 5번의 선거에 사용된 현수막은 14000t이다. 이번 총선기간에 사용된 현수막은 250만장, 벽보 23만부, 공보물은 3억2000만부로 예상하고 있다. 한줄로 이으면 약 9만5천km. 지구 2바퀴 반을 잇는 분량이다. 현수막 홍보물은 대부분 소각처리된다. 주성분이 플라스틱 합성섬유로 돼 있어 매립에도 문제가 있다.

소각시에는 유해물질이 배출돼 재활용이 불가피하다. 각 정당은 기후공약 등을 쏟아내면서도 재활용이 힘든 선거 홍보물의 사후관리에는 손을 놓은 상태다. 제21대 국회에서는 폐기물로 남을 현수막을 고민하며 공보물의 재질을 재생지로 바꾸거나 온라인 공보물로 대체하는 방안을 공직선거법 개정안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계류 중인 사안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구호가 사라진 골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들의 구호는 “국민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겠다는 호언장담이었다. 그러나 봄날의 구호는 벚꽃이 지듯 사르르 모두가 사라져버렸다.

청주시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은 지난달 25일 청주시 소재 문화예술단체를 대상으로 ‘2024 원도심 활성화 시민공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공모는 오는 27일(토)~28일(일) 오후 2시~8시까지, 중앙동 이팝나무길과 소나무길을 무대로 펼쳐질 ‘원도심골목길축제’ ‘봄:중앙동화’와 연계한 것이다.

행사기간 동안 △공연형은 1일 3회씩 총 6회 이상의 공연을 △체험형은 1회 수용인원 20~70명을 대상으로 한 1일 3회씩 총 6회 이상의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골목길축제
‘봄: 중앙동화’

동화를 테마로 한 축제는 2023년 ‘원도심 <walking holiday>’로 첫회가 진행됐다. 당시 축제는 중앙동 디저트 카페와 이팝나무길의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어린시절 향수를 불러올 수 있는 <헨델과 그레텔>을 핵심 콘셉으로 내세웠다.

축제의 목적은 △원도심 속 스토리텔링 및 문화예술 콘텐츠개발 △침체된 원도심 상권 회복을 위한 골목길 활용방안 제시 △원도심 곳곳을 돌아보는 이동형‧분산형 콘텐츠 운영 △원도심 내 주민, 상인, 문화예술기관‧단체 연계 굿-거버넌스 구축이다. 축제에는 청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 지역재생사회적협동조합 등 다수의 단체가 참여하여 축제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2023 청주원도심골목길 축제 [봄:중앙동화] 어린이 참가자 모습.   /청주시
2023 청주원도심골목길 축제 [봄:중앙동화] 어린이 참가자 모습. /청주시

시에 따르면 청주원도심골목길축제 ‘봄: 중앙동화’의 성과는 작지 않았다. 목표한 관람객의 25%를 초과한 2만5000명이 골목을 찾아서 동화의 세계로 빠져드는 동심을 맘껏 즐겼다고 전한다. 참고로 올해의 동화주제는 ‘빨간망토’라고 관계자는 말한다.

중앙동 이팝나무길에는 옛 학천탕이 있다. 때마침 올해는 학천탕 일원에서 골목길축제가 벌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학천탕은 청주 목욕업계의 대부 박학래 선생의 이름과 부인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온 이름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이는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설계사로 유명한 김수근 선생의 작품이다. 윤석위 시인의 말에 따르면 (청주길 사용설명서. 충청리뷰 2017. 8.24) 김수근은 학천탕 설계를 마지막으로 타계하셨다고 한다. 국립청주박물관이 그의 설계로 지어졌다고 하니 청주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그 옛날의 목욕탕은 알몸과 알몸이 뒤섞인 공간으로 서로의 육신을 부끄러움 없이 마주쳤던 내밀한 공간이다. 서로의 등을 ‘이태리 타올’로 기꺼이 밀어주며, 삶의 실핏줄이 붉어지는 것을 가까이에서 살피는 것이 가능했다. 점점 사라져가는 추억의 풍경을 간직한 골목에는 이처럼 그리운 시대의 향수가 머물러 있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쇠퇴한 마을에 대한 근린재생이 주목받고 있다. 그 결과로 생활환경 개선, 기초생활 인프라 확충, 공동체 활성화, 골목경제 살리기 등을 위한 사업이 해를 거듭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 대상으로 주목했던 골목은 주민들의 다종다양한 만남이 전개되는 사회교류의 장이다.

삶의 ‘실핏줄’
골목길

아이에게는 놀이의 장으로 노인에게는 사교와 정보의 장으로, 골목은 최소의 통행로라는 물리적 특성을 장점으로 지역 외 통행인들에게도 상호적으로 그 통로를 내어주고 있다. 사회적 공간으로 골목이 거듭 가치를 가질 때, 골목에는 고유의 리듬이 생긴다. 골목길만의 희소성이 있는 리듬이다. 이것이 골목의 정체성과 장소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현대의 골목은 종종 거대 자본가의 고소득 대상으로 변신 중이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던 주택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는 빌딩으로 채워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원주민은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는 자본가의 차지가 되고 마는 슬픈 일이 생긴다.

누군가는 핫플레이스로 소문난 골목을 찾아 즐긴다고 하지만, 그곳이 삶의 터전인 어떤 이들은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서 또 이동할 수밖에 없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반복해서 발생한다.

서울의 홍대나 경리단길, 경복궁 근처의 서촌, 상수동 등지는 한때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찾았다.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나 공방, 갤러리 등을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다. 입소문을 타고 온 이들은 어두운 골목의 반딧불과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거대자본이 유입되고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가 입점하면서 이들의 터전은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모했다. 치솟은 임대료로 그들은 터전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고 한다.

한창 준비에 바쁜 ‘봄: 중앙동화’의 축제가 벚꽃잎처럼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표를 달라고 찾아왔던 정치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 골목의 표정은 굳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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