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건피의자와 ‘딜’ 시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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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건피의자와 ‘딜’ 시도했나?
  • 충청리뷰
  • 승인 2003.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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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검사, 이씨 살인교사 혐의 집착해 위험한 승부수
89년 살인사건 내년 공소시효 만료, 교사여부 수사해야

김도훈 전 검사가 이원호씨 공갈갈취 교사혐의에 대해 수사를 하면서 피의자와 부적절한 딜(Deal:주요 범죄사실을 인정하면 작은 범죄사실을 불기소하는 행위)을 했다는 검찰의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수사기법상 불가피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공갈갈취 혐의를 밝히기 위해 검사가 딜을 한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따라서 김 전 검사가 무슨 이유로 피의자와 딜을 했는지, 그 배경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취재결과 김 전 검사는 최종적으로 이씨에 대한 살인교사 혐의점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판단된다.14년전에 발생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검사로써 위험천만한 승부를 걸었지만 결국 자신에게 족쇄를 채우는 부메랑으로 돠돌아왔다. 살인사건과 김 전 검사의 수사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지난 89년 청주 북문로 수아사 앞에서 조직폭력배 배모씨가 칼에 찔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신대명사파’의 20대 초반 조직원 2명이었다. 경찰은 이들의 살해동기가 뚜렷치않아 살인사건의 배후를 캐기위한 조사에 주력했다. 숨진 배씨와 주변의 원한관계를 파악했고 당시 이원호씨도 용의선상에 올랐다는 것. 사건 직전 배모씨는 진양관광호텔 대표였던 이씨에게 오락실 영업권을 요구했으나 결국 서울업자에게 넘어갔다. 이에 앙심을 품은 배씨가 이씨를 납치해 린치를 가한 것으로 알려져 경찰이 주목했던 것.

하지만 갈등경위만 파악했을 뿐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채 수사는 종결됐고 범인 2명은 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조직폭력배의 끔찍한 노상 살인사건은 이렇게 세인들의 기억속에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 99년 살인 피의자들이 만기출소하면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출소자 2명이 이씨를 찾아가 살인교사 혐의를 폭로하겠다며 위협해 거액을 뜯어냈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첩보가 작년 8월께 청주지검 강력담당 윤모 검사에게 전달됐고 일부 수사관들이 지역 조폭들로부터 방증수집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윤검사는 사건기록부에 등재하지도 않은채 내사종결하고 지난 3월 정기인사때 수도권 지청으로 전보됐다. 당시 윤검사는 살인교사 혐의점 이외에 이씨 소유 사업체에 대한 탈세 혐의점에 대해서도 채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윤검사의 돌연한 내사중단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한편 김도훈 전 검사가 살인교사 사건을 내사하기 시작한 시점은 올 1월로 알려졌다. 따라서 선배인 윤검사로부터 정보제공 또는 수사지도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검사는 당시 다른 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살인 피의자 김모씨를 소환해 살해배경에 대한 상당한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 하지만 김 전 검사는 한달 뒤 이원호씨에게 살인교사 협박을 가해 3500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신대명사파 조직원 김모씨를 구속하고 달아난 살인피의자 조모씨를 기소중지시켰다.

살인교사 혐의점에 주목했던 김 전 검사가 결정적인 증인이 될 수 있는 살인피의자를 이씨 공갈갈취 혐의로 수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사건수사도 인지형식이 아닌 이원호씨 고소사건으로 진행됐다. 김 전 검사가 이씨에게 고소장을 낼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결국 김 전 검사의 의도는 이씨를 협박한 피의자들을 공갈혐의로 압박할 경우 살인교사 여부에 대한 진술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살인피의자 조모씨와 ‘신대명사파’ 보스급들이 잠적하면서 살인교사 수사는 진척을 보지 못했다.

사건은 다시 서랍속으로 들어갔으나 지난 6월 김 전 검사는 딜 전략을 통해 이씨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다. 공갈갈취 혐의로 구속 또는 도피중인 김·조씨의 공소사실 가운데 이씨를 협박해 3500만원을 갈취한 부분을 빼주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 두 사람은 J볼링장 매각과정에서 원매자 홍모씨(몰카 제작의뢰 혐의로 구속중)를 협박해 9000만원을 받아낸 혐의점만 남게된다. 더구나 홍모씨는 두 사람에 대해 합의서를 제출하고 이씨가 협박을 사주했다는 내용의 자술서까지 법원에 제출했다.

홍씨는 J볼링장 매입후 대출과정에서 불법사실이 드러나 김 전 검사가 지난 2월 기소중지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합의서, 자술서 제출에 대해 김 전 검사와 사전조율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 청주지검의 몰카수사 과정에서도 홍씨 부부가 김 전 검사와 자주 통화한 내역이 드러나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김 전 검사는 홍씨의 자술서 등을 토대로 지난 6월 20일 이원호씨를 공갈갈취 교사혐의로 긴급체포하려 했다. 차장검사에게 보고해 허락을 받고 담당판사에게 당일 재판에 증인출석할 예정이던 이씨를 신병확보하겠다는 내용을 전달했다는 것. 하지만 부장검사가 딜을 통해 얻은 진술은 신뢰성이 없다며 보강수사를 지시해 긴급체포는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한편 홍씨가 작성한 합의서 내용은 ‘(김모씨)가족들이 용서를 구하고 단독범행이 아닌 제3자의 사주를 받고 저지른 것으로 판단돼 민형사상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진술서에서 “김모씨 등 3명의 피의자가 ‘(J볼링장 매각계약과 관련) 이회장이 중계수수료 1억원을 당신한테 받아가라고 지시했다’며 협박했다”고 언급하고 “마지막 잔금지불 현장에서 이회장이 ‘3명과 약속한 것은 지키는게 좋을 것’이라고 얘기해 지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홍씨는 자술서 결론부분에 “부동산을 팔면서 폭력배를 동원해 돈을 챙기게 하고 그들과 공생하며 사업을 하는 이회장을 철저하게 조사해 엄벌해 달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같은 합의서와 자술서를 바탕으로 김 전 검사는 지난 6월 20일자로 김모씨에 대한 공소장을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경부분은 이씨를 협박해 3500만원을 갈취한 부분을 제외하고 홍씨에게 1억원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이씨 관련 부분을 보강한 내용이었다.
또한 공갈혐의로 도피중인 조모씨의 자술서도 재판부에 제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씨는 자술서에서 ‘이씨를 협박한 사실이 없으며 선배들이 3500만원을 받았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조직원으로부터 1000만원, 선배 손모씨로부터 500만원을 받은 것이 전부이며 나머지 돈은 누가 가졌는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직선배인 손모씨는 2000년 8월 500만원을 건네주면서 “이원호씨가 열심히 잘살아 보라고 하더라, 사업 시작하면서 필요한 곳에 보태쓰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것으로 진술했다.

결국 이원호씨는 살인복역자인 조모씨와 조직 선배들에게 2000년 3500만원을 건네준 데 이어 지난해 9월 조·김씨가 J볼링장 매각과정에서 1억원을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 혐의가 짙다. 청주 유흥업계의 ‘대부’로 업소에 기생하는 폭력조직에 대해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이씨가 무슨 이유로 조·김씨에게 끌려다니고 뒤늦게 공갈고소를 하게 됐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김 전 검사는 조·김씨를 일단 공갈범으로 구속하고 집중추궁할 경우 살인교사 배후를 밝힐 수 있다는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범 조씨가 도피하는 바람에 진척되지 않았고 지난 6월 공소장을 변경해 조·김씨의 혐의사실을 축소해주고 이씨를 공갈갈취로 구속한 뒤, 살인교사 여부에 대한 결정적인 진술을 확보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2일 취재진은 공갈혐의로 청주지법 2호법정 오후 재판에 출석한 김모씨와 동료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김검사가 이런 식으로 보도되는 것이 안타깝다. 우린 소신있게 수사하려 했던 검사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밝힐 용의가 없느냐’ 말하자 “주변에서 노력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데 언젠가는 밝혀지지 않겠느냐”며 직답을 피했다. 마지막으로 ‘혹시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가 조직보스들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묻자 ‘지금은 말하기 곤란하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물론 김 전 검사가 피의자들과 공소사실에 대해 딜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 하지만 수사기법상 상위 범죄사실을 밝히기 위해 불가피했다면 용인될 여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 전 검사의 판단대로 수사가 진행됐다면 어떤 결과가 됐을까? 비록 김 전 검사는 피의자 신분으로 수감됐지만, 이씨와 관련한 가장 민감한 혐의점이었던 살인교사 여부에 대해 검찰의 철저한 재수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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