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채권추심 서민 두번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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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채권추심 서민 두번 죽인다
  • 김진오 기자
  • 승인 2004.05.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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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협박 심지어 폭행도, 정해진 법 절차 실효성 없다 기피

김모씨(44, 청주시 복대동)는 며칠 전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안부를 묻는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떨렸다.
의례적인 안부 전화라면 아내에게 걸었을 것을 의아해 하던 김씨의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이상한 남자 세 명이 찾아와서 삼촌이라고 둘러대며 아들을 찾더라는 것이다.
김씨의 아들은 이상한 아저씨라며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했고 이상한 생각에 담임선생님은 운동장 건너편에 서성이는 그들을 주시하다 김씨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뭔가 짚이는 데가 있던 김씨는 담임선생님을 통해 아들을 찾아 온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전화기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군요. 당장 달려 갔습니다"
2년전에 아내 명의로 모 캐피탈회사를 통해 구입한 자동차가 화근이었다.
매월 납입해야 하는 이자가 두 달 밀린 것이다.
김씨는 아내의 명의로 2002년 1400여만원에 모 캐피탈사를 통해 자동차를 구입했다. 이른바 '내맘대로 할부'를 활용, 5년에 걸쳐 상환하는 방식이었다.
차량 구입 후 지금까지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납입해 오다 최근 몇 달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아 연체를 하고만 것이다.
김씨는 "집를 이사 하면서 미쳐 주소를 옮겨 놓지 않았다. 아마 (캐피탈사 직원이)연락이 되지 않자 아이가 다니는 학교까지 찾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캐피탈사 직원은 항의하는 김씨에게 미안하다며 '가능한 방법을 찾아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 갔지만 김씨는 분을 삭이기 힘들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가 놀라 쓰러지기 까지 한 것이다.
사실 김씨는 캐피탈 회사에서 자신을 수소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처남에게 캐피탈 회사라며 채무사실을 알리고 형사고발 하겠다는 전화가 걸려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빌려 쓴 돈을 갚지 못하는 것이 잘못인 줄은 안다. 그러나 몇 달새 사정이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연체를 하게 됐다. 계약자인 아내의 신용도 문제가 없다. 급한 것은 나다. 이것이 문제가 되면 아내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 아니냐"
김씨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또다시 IMF 때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김씨는 IMF가 오기 전까지 제법 큰 사업을 하던 사업가였다. 건설회사에 물건을 납품하며 연간 100억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IMF가 터지고 건설회사가 줄도산 하면서 김씨가 운영하던 업체도 연쇄 부도를 내고 만 것이다.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더군요. 대금을 지급해야 할 곳은 많죠 돈 받을 회사는 도산했죠. 자금융통은 불가능하죠 결국 저도 회사를 정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인생의 쓰디쓴 맛을 다 본 김씨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다시한번 이를 악물게 됐다.

협박을 넘어 채무자 폭행도
경기불황으로 가뜩이나 힘든 서민들을 또 한번 울리는 것이 불법채권추심이다.
IMF 이후 대출금 등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은행, 보험, 카드, 캐피탈 등 금융회사는 ‘채권팀’을 별도로 운영하며 악성 채권 회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득히 하게 빚을 갚지 못하는 서민들이 추심직원들의 불법행위로 이중의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제3자에게 채무사실을 알리는 것은 기본이고 가족에게 형사고발 운운하며 협박하기도 하며 심지어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발생한다.
캐피탈사에 연체금이 있는 한 피해자는 집을 비운 사이 강압적으로 집안에 들어와서 어머니에게 본인의 채무금액은 물론 다른 금융기관에 있는 총채무액을 알리고 카드가 21개이며 형사고발된다는 허위사실로 협박, 어머니가 놀라 건강이 악화됐다.
김모씨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카드사 연체금 53만원을 청약저축을 해약해 갚으려고 은행에 갔지만 카드사에서 청약저축에 지급정지를 해 놓았다. 게다가 카드사를 방문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보복 추심에 시달리기도
채권의 추심은 현행 ‘대부업법’과 ‘신용정보의이용및보호에관한법률’로 그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법률에 따르면 폭행 또는 협박을 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을 사용하는 행위, 채무자 또는 그의 관계인에게 채무에 관한 허위사실을 알리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그 사실을 알려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
또한 심야방문 등과 같이 채무자 또는 가족 등의 사생활이나 업무를 방해해서도 안된다.
김씨의 경우 초등학생 아들을 학교까지 찾아 온 것이나 처남에게 전화를 해 채무사실을 알리고 형사고발하겠다고 협박한 것도 명백한 불법 추심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며 위법행위가 심각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법채권추심 행위로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돈을 빌렸으면 당연히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피해자도 형사고발 등의 수단을 기피하고 있고 사법당국도 당사자끼리의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 관계자는 “서민들이 불법 추심행위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대부분 관련 법령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안다 해도 돈을 못 갚는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감수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며 “막상 사법기관에 고발해도 당사자끼리 해결을 종용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보복 추심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도 불법추심으로 인한 진정이 전체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피해의 정도가 심각한 실정이다.

불법채권추심은 ‘비보호좌회전’
불법 채권추심의 피해가 심각한 것은 악성채권으로 골머리를 앓는 일부 금융기관과 추심사들의 잘못된 추심 관행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채권회수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불법 행위를 묵인하거나 심지어 이를 종용하기 까지 한다.
한 카드사 채권팀 직원은 “불법 행위에 대한 교육은 수시로 이뤄진다. 그러나 업무에 있어서는 법대로 한다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는다”며 “불법 추심은 한마디로 비보호좌회전이다. 묵인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직원의 책임이 되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기에 채권팀 혹은 추심사 직원들의 안정적이지 못한 신분도 불법행위를 부추기는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회수금에 대한 수당을 받는다. 따라서 이직율로 상당히 높다.
그러다보니 채무상환을 회피하는 이른바 악성 채무자에 대한 법률 절차가 있지만 최소 몇 개월 이상 걸리는 등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채무자의 권리는 온데 간데 없고 실적 올리는 데에만 몰두하게 된다는 것이다.
채권추심 직원들은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강조한다. 악성 채무자들중 정말 없어서 못 갚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률로 정한 범위를 넘어서 추심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 관계자는 “법대로 하면된다. 현행법은 얼마든지 추심기관이 정당한 추심행위를 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다”며 “재산 압류, 소액심판, 지급명령, 공시송달 등의 제도가 뒷받침 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형사처벌도 받게 할 수 있다. 상환을 기피하는 채무자에 대해 평생 동안 멍에를 안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무분별한 카드 발급과 신용대출 등 금융기관 스스로 악성 채무자를 양산한 측면이 강하다”며 “금융기관도 부실 채권으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궁극적으로 피해 보는 것은 서민”이라고 덧붙였다.

신용정보사 도입 등 자정 움직임 일어
불법 채권추심에 대한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추심사 사이에도 자정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단법인 신용정보협회가 과다한 민원의 발생으로 인해 훼손된 업계의 이미지 등을 회복하기 위해 신용관리사 제도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신용관리사는 공인중개사와 같이 전문 자격증으로 앞으로 신용관리사 자격을 취득해야만 추심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신용정보협회는 자격등 제도의 도이으로 채권추시직원의 자질향상과 업부의 획기적 개선으로 채권추심업의 선진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민원발생 외에도 업체간 무리한 스카우트 경쟁으로 인한 고용질서 문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자격증 제도의 도입으로 업계 이미지를 바꾸고 고객서비스 향상 등 많은 부분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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