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대통령 청주에 유폐되기 원했다
상태바
전두환 전대통령 청주에 유폐되기 원했다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4.05.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주 보살사 주지스님 만난후 의사 강력 피력
사진 찍고 현황 파악한 후 경호문제로 무산

전두환 전대통령(이하 전두환)은 백담사보다는 청주를 더 원했다. 청주시내에 인접한 보살사(주지 종산스님·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7일대)가 자칫 ‘전두환의 유폐지’가 될 뻔한 것이다. 2001년 2월 9일 전두환은 느닷없이 이곳 보살사에 수행원을 대거 이끌고 나타났다. 당초엔 조용한 방문을 원했지만 소문이 퍼지면서 신도는 물론 지역 기관 단체장과 언론사 기자들까지 북적거린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전두환과 이곳 보살사 주지스님의 각별한 연(緣)을 기사에 올렸다. 전두환이 교도소와 백담사에 있을 때 종산스님이 자주 찾아 위로했다, 전두환의 유배지 선정을 앞두고 전국 시·도마다 한 곳씩의 사찰이 물색됐는데 충북에선 보살사가 추천됐다, 이런 확인되지 않은 억측들이 난무한 것이다. 하기사 도시 인근이라고는 하지만 촌구석의 말사(末寺)에 전직 대통령이 들이닥쳤으니 언론으로선 ‘도표’를 그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 자세한 얘기가 최근 당사자인 종산스님으로부터 나왔다.

보살사 종산스님은 지난 3월 31일 조계종의 최고 의결기관인 원로회의의장에 무기명투표로 선출된 국내 참선(參禪) 수행의 최고 큰 스님이다. 속세나이 80을 넘긴 지금도 틈만 나면 사찰 뒤편의 토굴에 칩거하며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토굴은 간신히 앉을 정도의 공간으로, 하루 한 두시간의 수면 외엔 면벽(面壁)으로 일관한다. 종산스님은 중생구제의 수행엔 끝이 없다며 당시의 얘기를 덤덤히 건넸다.

청주 사람들이 최초로 백담사 면회

   
▲ 다시 맞은 5·18, 광주학살의 원혼들은 지금도 구천을 헤매고 있다. 백담사 유폐로 한 때 불교에 귀의한 전두환 전대통령은 과연 참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묻고 싶다. 사진은 보살사 전경과 이곳을 찾은 전두환씨. / 육성준 기자
종산스님이 전두환을 만난 것은 그가 백담사로 들어 간 이후다. 권력의 무상함을 되뇌이며 인고의 나날을 보내는 그에게 종교적 위안은 삶을 지탱하는 큰 방편이 되었다. 이 때 자신을 이끌어 줄 정신적 지주를 간절히 원하게 됐고, 주변에 두루 자문을 구한 결과 종산스님을 추천받게 된다. 어느날 백담사로부터 “ 뵙고 싶다”는 기별을 받은 종산스님은 몇몇 신도들과 차한대로 청주 상당공원에서 출발하기로 했는데 막상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신도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버스는 일곱 대로 늘었다. 백담사에 격리된 전두환의 최초 면회를 바로 청주사람들이 한 것이다.

전두환을 맞은 종산스님은 그에게 무소유의 참의미와 자비, 사랑, 진리 등을 얘기했다. 종산스님은 “지금까지도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스님)은 없다라는 종교적 신념에 충실하고 있다. 가족이 부처님이 될 수 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배워야 할 스승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내가 갖지 못한 단 한가지라도 가졌다면 그가 바로 내가 따라야 하는 스승이다. 사람뿐만아니라 삼라만상의 자연현상이 나에겐 구도의 스승이 된다. 이처럼 ‘비움’의 참뜻을 터득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그 분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전두환은 아예 청주 보살사로 거처(?)를 옮길 것을 강력 희망한다. 곧바로 검토에 들어갔고, 현지에 급파된 관계자들이 보살사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어 갖고 올라갔다. 문제는 경호였다. 도심 인근에 위치한데다 주변에 특별한 자연적 엄폐물(?)이 없는 상태에서 선뜻 이곳에 내려 왔다간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종산 큰 스님의 가르침에 목말라하던 전두환은 여러번 청주행을 고집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2001년 2월 전두환의 보살사 방문은 말 그대로 “갑자기 오고 싶다고 해 앞뒤 잴 겨를도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전두환, 10일만에 천수경 외워
지금도 가끔씩 측근들을 통해 안부를 전한다는 종산스님은 전두환에 대해 뚜렷한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 분이 외모는 강하지만 유머도 많고 또 말씀이 청산유수다. 무슨 하고싶으신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사회안정, 호국영령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나는 거처에 따른 불편함을 꺼낼 줄 알았다. 천수경을 외우길래 몇일 걸렸냐고 했더니 10일이라고 답변했다. 일반인들은 족히 한달은 걸린다. 이걸 다 외우는 것을 보고 그분의 말이 거짓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천수경을 외우는데 목소리가 어찌나 절도있고 힘있는지, 역시 무인은 무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산 스님에 따르면 전두환은 군생활시절 통일은 전쟁으로만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가 대통령직과 백담사 수행(?)후 바뀌었다는 것이다.
종산 큰 스님의 가르침에도 불구, 전두환은 여전히 부정축재에 연루돼 그 가족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있고, 광주학살 주범이라는 원죄 때문에 숙명처럼 천형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약 두시간의 대화에도 가부좌를 한번도 바꾸지 않는 꼿꼿함을 보인 종산 큰스님도 이런 현상(?)에 대해 착잡함을 피력했다. 보살사를 안고 있는 이곳 보타낙가산은 현재 인근의 김수녕양궁장과 시민휴식처로도 유명한데, 이 산의 이름은 관세움보살이 상주하며 중생을 구제했다는 남 인도지방의 보타낙가산에서 연유했으며, 보살사란 절이름 또한 관세움보살에서 따 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