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의 미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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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미술세계
  • 이상기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박사
  • 승인 2024.01.1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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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점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김환기는 1913년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니혼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해방 후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미대 교수를 역임했다. 파리에 유학했고, 1963년부터 뉴욕에 정착해 점화를 완성했다. 2023년은 김환기 탄생 110주년으로 호암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한 점 하늘 김환기>가 열렸고,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 점점화> 전시가 열렸다. 김환기의 미술세계를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환기미술관은 종로구 자하문로40길 63에 있다. 환기미술관의 모태는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이 만든 뉴욕의 환기재단이다. 1992년 환기미술관 준공 후 김환기의 작품과 그의 수집품 2,500여 점이 국내로 들어와 소장품이 되었다. 작품으로는 유채, 드로잉, 과슈, 오브제, 콜라주, 편지 그림이 있다. 환기미술관은 재미 건축가 우규승의 설계로 1990년 착공하고 1992년 11월 본관이 준공되었다. 이어 1993년 11월 별관, 1997년 11월 달관이 문을 열어 3개 동이 되었다. 달관은 성북동 김환기 고택의 이름을 따 수향산방(樹鄕山房)으로 불린다.

환기미술관의 점점화 전시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김환기의 점점화 전시가 열렸다. 김환기 탄생 110주년 기념전이다. 본관에서 <김환기 점점화(點點畵) 1970~74>, 별관에서 <Whanki Archive 1963~69 김환기의 뉴욕 기록들>, 달관에서 뮤지엄 가이드 II <예술가의 방: 김환기의 New York Studio>가 열렸다. 본관은 3층으로 되어 있으며, 환기미술관의 본 전시실이자 상설전시실이다. 달관은 특별전시실로 김환기의 뉴욕 스튜디오를 재현해 놓았다.

김환기는 1913년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부유하고 미술에 재능이 있어 1933년 도쿄의 니혼대학 예술과 미술부에 입학해 그림을 배웠다. 1937년 도쿄의 아마기 화랑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귀국해 화가로 활동하며 1941년 서울 정자옥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열었다. 해방 후인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가 되어 1950년까지 재직했다. 1948년 유영국, 이구상 등과 신사실파를 조직해 활동했다. 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해 뉴서울 다방에서 제3회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1952년부터 1955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김환기의 미술은 살아온 시기와 장소에 따라 세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1950년대 중반까지 도쿄와 서울시대다. 이때까지 김환기는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를 하며 신사실주의 화풍을 보여준다. 1956년 파리로 유학을 가면서 새로운 화풍에 도전하고, 1959년 귀국해서 다시 홍익대 교수를 하면서 새로운 실험을 한다. 이때가 파리와 서울시대다. 그리고 1963년 뉴욕으로 떠나면서 뉴욕시대가 열리고, 그의 대표작인 점점화가 탄생하게 된다. 김환기의 작품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면에서 점으로 변화해 간다.

점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김환기의 뉴욕시대는 1963년 10월부터 시작된다.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대표로 참석한 후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새로운 문화예술의 중심지 뉴욕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나는 1974년 7월까지 그는 뉴욕에 머물며 새로운 조형세계를 추구한다. 그는 구상에서 추상의 세계로 향하고, 추상의 정점에서 점화(點畵: All-over dot paintings)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창조해 낸다. 김환기는 뉴욕에 도착한 후부터 일기를 쓰는데, 1963년 10월 27일부터 1974년 7월 12일까지다. 이곳에서 우리는 그의 삶과 예술을 파악할 수 있다.

'수향산방'수화 김환기가 아내 김향안과 살던 성북동 집
'수향산방'수화 김환기가 아내 김향안과 살던 성북동 집

점화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65년 1월 2일이다. “1월2일. 아침부터 백설(白雪)이 분분(紛紛)... 종일 그림 그리다. 점화(點畵)가 성공할 것 같다. 미술은 하나의 질서다.”그런데 1월 10일 “점화를 전부 뭉개고 다시 시작”한다. 작품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1월 11일에 “간신히 점화(點畵) <겨울의 새벽별>을 완성. 완성의 쾌감. 예술은 절박한 상태에서 만들어진다.”이를 통해 최초의 점화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점은 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은 절박한 상태에서 만들어진다”고 김환기는 말한다.

1월 13일에도 간신히 작품을 하나 끝낸다. 작품 제목은 <성가족(星家族)>이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표현한 것 같다. 여기서도 점이 별이다. 김환기는 이제 “아, 좋은 그림 그릴 자신이 있고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세상은 왜 이리 적막할까”라고 탄식한다. 1월 24일에는 “선(線)과 점(點)을 좀 더 밀고 가보자”고 다짐한다. 2월 5일에는 뉴욕이라는 미술세계에서 꿈을 이루고 귀국할 것을 다짐한다.

1968년부터 선보다는 점에서 개성을 찾는다. 이때 “색점(色點: 1월 2일 일기)”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1월 23일에는 “나는(飛) 점(點),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 보자.”고 말한다. 1월 28일에는 색깔과 형태를 달리한 점화를 시도한다. “Oil on Paper 2점하다. 빨간 바탕에 노란 삼각형 점(點). 이제까지의 내 빛깔이 아니다. 밝은 빛을 좀 더 해봐야겠다.” 2월 1일에는 어느 정도 만족한 점화를 완성한다.

 

“어제 하던 일(Oil on Paper)을 끝마치고 새로 5점을 했으니 가장 다작(多作)한 날인가. 새로운 감흥이 나는 것 같다. 예술은 하나의 발견이다. 피카소가 이 생각에 도달했다는 것은 참 용한 일이다. 그렇다. 찾는 사람에게 발견이 있다. 일을 지속한다는 것은 찾고 있는 거다.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세계(자연)가 아닐까. 3점 했는데 두 점만은 맘에 든다. 나는 이 두 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상기 :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다. 독일문학을 전공해 한국외국어대학교 대우교수를 했다. 현재 중심고을연구원장으로 문화재청 지원을 받아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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