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의 미술세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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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미술세계 2
  • 이상기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박사
  • 승인 2024.02.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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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년 1월 1일 김환기는 그때까지 한 예술작업을 점검한다. 캔버스 작품이 100점, 창호지에 오일(유화) 작품이 53점이다. 오후에는 점화작업에 착수 Oil on Paper를 2점 그린다. 2일에도 2점, 4일에도 1점을 그린다. 1월 8일에는 점화와 관련된 자신의 예술관을 이야기한다.

“내 작품은 공간의 세계란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 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어쩌면 내 맘속을 잘 말해주는 것일까. 그렇다 내 점의 세계... 나는 새로운 창을 하나 열어 주었는데 거기 새로운 세계는 안 보이는가 보다. 오호라...”

새로운 창과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점

김환기 자화상
김환기 자화상

1월 9일에는 “구작(舊作)을 뭉개고 70″× 50″종일 밤까지 해서 완성. 성공적인 못 된다”고 아쉬워 한다. 1월 12일에는 Oil on Paper를 2점을 끝낸다. 김환기는 고생을 하면서도 예술을 지속한다. 그러면서도 삶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한다. 삶을 위해 딴 일을 하다가 예술로 돌아가 정진할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해 본다. 그 때문인지 김환기는 술과 담배에 더 탐닉하는 것 같다,

“나는 술을 마셔야 천재가 된다.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 (1970년 1월 27일 김환기 일기)”

다행히 김환기의 점화를 좋아하는 화상이 나타난다. 1월 27일 “오후에 Desset부처(夫妻: 화상) 오다. 금추(今秋) 내 개전(個展)을 할지도 모르는 일. 여하튼 생각 못했던 도움을 받다.” 2월 11일에는 한국일보가 주관하는 한국미술대상 전람회에 작품을 내달라는 연락을 받고 출품하기로 한다. 이때 김환기는 “이산(怡山: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늘 마음 속으로 노래한다. 시화(詩畫) 대작을 만들어 ‘한국전’에 보낼까 생각해 본다.”

김광섭은 1960년대 김환기와 함께 성북동에 살며 도시인의 삶을 시를 노래했다. 그 중 대표작이 《월간중앙》(제20호: 1969년 10월)에 발표된 <저녁에>다. 김환기는 이산의 시에 감동 받아 그 내용을 그림으로 옮겨보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색연필과 펜으로 점화를 시도해 보았다. 그것이 30.5×22.9㎝로 만들어진 점화 ‘무제’다. 이 그림 한 가운데 김광섭의 시 <저녁에>가 들어가 있다.

무제 1970년2월2일에 그려진 점화.
무제 1970년2월2일에 그려진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리고 이 그림에서 시를 빼고 온전하게 점화로 승화시킨 작품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다. 영어 제목은 <Where, in What from, shall we meet Again>이다. 코튼에 유채로 그린 292×216㎝의 대작으로 <10-VIII-70 #185>라는 또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다.

 

저렇게 많은 ()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3월 25일에는 사등분점화(四等分點畵)를 시작한다. 6월 7일에는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한국전’ 대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를 통해 김환기의 점화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다. 6월 23일에는 《주간한국》에 김환기의 점화에 관한 기사가 실린다. 마산에 사는 강신석(姜信碩)으로부터 그 기사를 편지로 받아본 김환기는 고향 생각이 난다. 편지에 뻐꾸기가 울어댄다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앞바다 돗섬에 보리가 누렇다 한다. 생각나는 것이 많다. 부산에서 향(鄕: 아내)과 똑딱선을 타고 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가던 때... 맨해튼... 지하철을 타고 뻐꾸기 노래를 생각해 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년 그려진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년 그려진 점화.

7월 15일 일기를 보면 김환기는 화면구성, 점의 형태와 색깔(청점, 흑점, 홍점, 사점, 횡점, 구획점)에 대해 다양한 실험을 한다. 8월에는 점화를 큰 화면(大幅)에 그리는 실험을 한다. 그리고 이때 운전면허를 땄는지 처음 주행(Drive) 연습을 한다. 9월 가을이 되자 파리시절 생각이 난다. 청명한 날에는 복잡한 맨해튼을 떠나 교외로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신다.

김환기는 자연만큼이나 인간사에도 관심이 많다. 11월 10일 아침에는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드골 장군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리고 115×85″ 점화 2점의 작업을 마친다. 그런데 작품이 지나치게 커 스튜디오 문을 통과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톱으로 틀을 자르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상기 :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다. 독일문학을 전공해 한국외국어대학교 대우교수를 했다. 현재 중심고을연구원장으로 문화재청 지원을 받아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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