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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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 이명옥 시민기자
  • 승인 2003.1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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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성적 소수자) 영화제 29일까지

 지금 청주에서는 퀴어영화제가 한창이다. 시네오딧세이에서 12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퀴어 베리테- 레즈비언, 게이 다큐멘터리의 지도그리기"라는 이름의 퀴어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퀴어(queer)는 영어사전으로는 동성애 남자를 뜻하나, 성적 소수자인, 레지비언, 게이를 통틀어 말한다. 이번 퀴어영화제에서는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영화를 상영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아직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보수적인 곳이라는 청주에서, 퀴어들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하루에 4-5편씩, 총 14편을 상영하게 되는 이번 영화제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그런 관심이 실행에 옮겨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행사장에는, 관계자 외 영화를 즐기기 위해 온 관객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 혹은 두려움이 그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에까지 미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번 영화제의 주요 상영작으로는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던 <헤드윅>의 제작과정과 뒷 이야기를 담은 <좋든 싫든:헤드윅 이야기>, 니카라과에서 처음으로 제작방영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 <섹스토 센티도>와 그에 관련된 다큐멘터리인 <노베라, 노베라>를 함께 묶은 <니카라과의 호모들>, 자발적으로 에이즈 감염자와 섹스를 나누고 또 HIV 바이러스를 선물로 증정하는 게이 하위문화의 모습을 추적하는 <선물>, 미국의 여성음악운동의 역사 속에서 레즈비언 음악 운동의 궤적을 소개하는 <여전사들의 합창>, 그리고 급진적인 게이 흑인민권운동가 바야드 러스틴의 생애를 소개하는 작품으로 올 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절찬을 받았던 <이방인 형제:바야드 러스틴의 생애> 등이 있다.

여기서, 27일 보고 온 "<필라델피아> 그 후 십 년"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영화 <필라델피아>는 에이즈에 걸린 한 동성애자가 회사에서 쫓겨난 후, 그것에 대항해 소송을 거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이 영화는 <양들의 침묵>의 조나단 드미가 감독을 맡았고, 톰 행크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덴젤 워싱턴 등 쟁쟁한 스타들이 참여한 헐리우드 주류 영화인데, "<필라델피아> 그 후 십 년"은 그 <필라델피아>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어떤 과정으로 배우를 섭외하게 됐는지, 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등을 상세하게 담은 보고서다.

감독은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 미국 시민들에게 이 영화를 통해, 동성애자 또한 다르지 않음을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에이즈는 1984년 처음 미국에서 발생했다. 아직까지 발생근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인 이 병은 동성애자 특히, 게이들에게만 나타나는 병으로 잘못 알려졌었다. 그리하여 동성애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에이즈는 HIV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의 체액이나 혈액을 접촉하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병으로 동성애자 뿐 아니라,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병인 것이다. <필라델피아>가 그런 에이즈에 대한 오해를 어느 정도 씻어주었다고 할 수 있고, 또한 동성애자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누그러뜨렸다고 할 수 있다.

"<필라델피아> 그 후 십 년 "에 등장하는 배우 톰 행크스는 감독이 주인공 역을 부탁했을 때, 흔쾌히 승낙을 했으며, 연기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공 그 자신이 되기 위하여,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들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그들의 느낌을 살려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는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필라델피아>에서 변호사로 나오는 덴젤 워싱턴은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던 일반적인 사람이었지만, 주인공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필라델피아>에는 많은 에이즈 환자와 동성애자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에이즈 환자들은 영화가 완성단계에 들어서면서 반 이상 숨을 거두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지난 2000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그 당시는 탤런트 홍석천씨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혀, 방송에서 쫓겨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던 때였다. 그로인해 그때까지 감춰져왔던 동성애에 대한 논의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게이나 레즈비언, 이반이라는 낱말 자체가 낯설던 우리들에게 그의 발언은 충격이었지만, 그만큼 우리들에게 성숙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그도 방송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얼마만큼 우리사회가 열린 공간으로 변화되었는지는 흔쾌히 말할 수 없다.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음양의 조화'라는 이름으로 은근하게 이성간의 결합을 강요해왔다. 역사책이나 비사를 보면, 양반집 규수댁이 몸종과 사랑을 나누어, 그것에 대해 벌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나라의 동성애에 대한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은 남자, 부인은 여자라는 이분법적인 유교 문화에 뿌리박고 있는 우리 선조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동성애자들을 처벌하였던 것이다.

요즘 TV 드라마와 주류 영화를 보면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름다운 그 무엇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얻고,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성취하는 것이 사랑의 전부인 것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어떤 잣대로 평가하고 그로 인해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라델피아> 그 후 십 년"은 이처럼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우리나라의 편향된 성적 취향의 잣대를 생각하도록 하며,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상식으로 말미암아,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지나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조금의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청주뿐 아니라, 몇 몇 지역을 돌며 이 영화들이 상영될 것이라 하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다양한 주제로 영화가 상영되니 한 번 쯤 친구나 가족과 함께 봐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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