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군 영춘면 비만 오면 ‘좌불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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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 영춘면 비만 오면 ‘좌불안석’
  • 경철수 기자
  • 승인 2011.08.1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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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장마 최고 강수량 934㎜ 예년 2배 강수량
보은 18년만 물난리·물길 돼 버린 진천 지곡교

물난리 충북도 안전지대 아니다

갈수록 대기 불안정으로 인해 시간당 65㎜(청주)에서 95㎜(보은)까지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충북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란 지적이다. 예년에 비해 빨리 찾아온 도내 올해 장마기간 강수량은 평년 440㎜보다 2배가 많은 최대 934㎜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특히 도심 미관을 고려해 도로 포장이 늘어나고 지류하천이 사라지면서 시간당 100㎜안팎의 집중호우가 쏟아질 경우 도내 도심하천 대부분이 범람해 수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실제 보은군·읍에 사는 70대 할아버지는 '18년 만의 물난리'라 불리던 지난 1998년 8월 중순께 집중호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루 최대 340㎜의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농경지 대부분이 흙탕물바다로 변하고 수한면 일원 농가들이 지붕만 남긴 채 물에 잠

▲ <자료제공=청주기상대>
겼다. 보은으로 통하는 상당수 도로가 하천 등지에서 범람한 물에 잠겨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고 보은읍내 주민 1만8000여명이 새벽부터 고지대 건물로 긴급 대피해 적막감마저 돌았었다.

보은 읍내를 가로지르는 보청천은 살인적으로 불어나는 빗물로 금방이라도 범람할 것 같은 기세에 떠내려 온 전자제품과 의류, 생활쓰레기 등이 뒤섞여 아수라장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하루 최대 302㎜ 비가 내려 보청천이 범람한 80년 7월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며 "조속한 대피를 종용하는 관공서 안내방송이 연일 계속됐고 잠을 자다가 세면도구와 이불만 챙겨 피난한 이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강수위 조절…인근주민 피해"

▲ 지난 2006년 7월 진천군 백곡면에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을 입은 수박농가 주인이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진천군 백곡면에 사는 주민들은 지난 2006년 7월말 시간당 64㎜(총 강우량 312㎜)의 폭우로 침수피해를 입었던 당시를 잊을 수 없다. 백곡면과 지곡마을을 잇는 지곡교를 넘지 못한 물이 다리를 타고 마을로 유입되면서 온통 물바다로 변한 것이다. 지곡교는 앞선 2002년 수해 이후에 새롭게 건설된 지 불과 4년 밖에 안 된 다리였다. 마을 주민들 편의를 위해 7억여 원이란 돈을 들여 새롭게 건설한 교각이 물길 역할을 하면서 오히려 마을 주민들의 보금자리를 덮친 것이다.

비만 오면 안절부절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단양군 영춘면 일원이다. 지난 2006년 7월 16일 충주호 제한수위 168m에 거의 육박하는 167.6m의 수위를 기록하며 범람위기를 맞았다. 당시 영춘면 주민들은 충주댐 수문을 열어 달라고 아우성이었지만 충주댐 방류량이 늘어날 경우 자칫 경기지역이 홍수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수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행히 장마전선이 남하 하면서 비가 그쳤고 강원지역에서 초당 2만여 톤이 유입되던 물의 양도 줄어 범람이란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충주댐은 장마철 한강수위 조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충주댐의 방류는 언제나 한강홍수통제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충주호에서 방류된 물은 팔당댐으로 흐르고 팔당댐의 방류는 서울 한강수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단양군 영춘면 주민들은 집중호우가 내리면 긴급 대피했다 비가 그쳐야 집에 되돌아 올 수 있다. 강원도 영월 동강이 이어지면서 남한강 발원지가 된 단양군 영춘면은 남한강을 막아 조성된 인공호인 충주호의 최상류 지역이다.

“56년 모래사장이 된 무심천 범람”
지난 1972년부터 영춘면 일원의 수해는 계속돼 왔다. 2002년 수해 때도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지역 수위조절이라는 명분 아래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 지난 1972년 8월19일 단양과 제천 남한강변에 발생한 물난리로 80% 이상이 물에 잠겨 전기와 통신이 끊기고 도로가 유실돼 고립되는 충북 역사상 최대 홍수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수해로 도내에서는 1개시 3개 군 13개면 8977세대 4만 9672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참사로 기록돼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 1986년 충주댐이 조기에 완공되기도 했다.

지난 1956년 7월15일 청주 무심천은 장마로 떠내려 온 흙과 모래로 바닥이 높아지면서 제방이 범람해 석교동과 서운동, 서문동 등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남주동 시장에서 모충동으로 통하는 나무다리가 유실되고 우시장 주변 건물이 물에 잠겨 지붕만 보였다고   한다. 폭우로 물이 불어난 무심천 주변을 구경하던 청주 시민들은 모래사장으로 변한 무심천과 호수로 변해 버린 청주 수곡동 청주교대 일원을 지켜만 보았다고 한다. 또 하수가 역류해 침수되었던 무심천 인근 저지대 석교동, 서운동, 서문동 일원의 피해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운기 사진작가(전 충청일보 사진기자)는 ‘사진으로 본 충북의 어제와 오늘’이란 기고문에서 “무심천이 범람해 위태로워지자 경찰서 사이렌이 울리고 높은 지대로 피신하라는 가두방송까지 더해져 청주 시내 중심가는 긴장이 고조됐다”며 “신문사도 귀가를 지시해 남주동 시장을 지나 모충동으로 통하는 나무다리를 찾았지만 벌써 떠내려가고 없었다. 무심천 제방 곳곳에는 제방붕괴를 대비해 경찰과 소방관이 멍석과 가마니로 위험지대를 덮고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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