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뭉쳤다
상태바
그래서 우리는 뭉쳤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11.07 1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 48개 작은 서점들의 연합체 발족

2011년, 도시에서 살던 평범한 우리 부부는 자연속의 삶을 꿈꾸며 충청북도 괴산 시골마을로 귀촌했다. 그곳에서 책으로 가득한 집을 만들고, 책을 읽고, 또 책을 팔며 살고 싶었다. 찾아오는 이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따뜻한 삶을 꿈꾸었다. 욕심내지 않는 소박한 삶을 살되, 책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품위 유지를 할 수 있는 자립경제도 꿈꾸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2014년 4월, 작은 서점을 열었다. 그뿐이었다. 어쩌면 한여름밤의 꿈처럼 그렇게 잠시 환상적인 실험에 그치고 말았을 수도 있었던 이 일이 그러나 벌써 5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에서 우리들의 꿈을 응원하는 많은 분들의 격려가 있었고 우리와 같은 꿈을 꾸던 이들이 용기를 내어 이곳저곳에서 서점 문을 열기도 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발족
조사에 따르면 우리와 같은 형태의 작은 책방들이 2015년, 70여 개에서 2018년 현재 300 여 곳까지 큰 폭으로 늘어났다. 기존의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나 학습참고서를 주로 취급하는 중소형 서점과 달리 책방지기의 취향과 개성을 반영한 독특한 공간에 잘 엄선된 책들을 갖추고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런 책방들은 지역에서 큰 관심과 화제를 모았다.

10월 22일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창립총회를 열고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런 관심과 달리 현실은 척박해서 작은 책방들은 이런저런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책을 팔아서는 도심 상가의 높은 임대료와 운영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유통 문제가 있다. 한 달 매출이 높지 않은 구멍가게들이다 보니 대형 유통사나 출판사들과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트는 게 쉽지 않다. 불완전한 도서정가제로 인해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과는 출발부터 불공정 경쟁을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서점 이용은 무료라는 인식이 강해서 공공도서관과 달리 사적인 영업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서점에 들어와 공짜로 책을 보고 책을 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업이익이 크지 않으니 다른 인력 없이 운영하는 1인 책방이 대부분이라 많은 책방지기가 과잉 노동과 감정 노동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어려움들 때문에 의욕적으로 책방 문을 열었지만 운영이 어려운 곳이 많고, 초기 임대기간이 만료되는 2년을 전후해 폐업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어려움들을 함께 극복해보자는 목소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물밑 논의들을 거쳐 드디어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약칭 책방넷)가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창립총회에 참석한 회원들.

지난 10월 22일, 책방넷은 부산시 연제구에 있는 어린이청소년서점 <책과 아이들>에서 정식으로 창립총회를 열었다. “혼자서는 먼 길을 가기가 힘듭니다. 이렇게 모인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건 물론이지만 앞으로 동네책방을 통해 전국에 책문화가 활짝 꽃피도록 함께 노력해봅시다. 희망을 만들어가는 동네책방이 되어 봅시다”

부산의 어린이청소년서점 ‘책과 아이들’

초대 회장을 맡은 김영수 <책과아이들> 대표는 20년 동안 부산에서 동네책방을 꾸려오면서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그것을 잘 견뎌내 이렇게 뜻을 모을 동료들과 만나게 되니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재 책방넷에 회원으로 가입한 동네책방은 서울에서 제주까지 48개 서점. 문을 활짝 열었으니 앞으로 더 많은 동네책방들이 함께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우리를 하나로 모은 건 서로 만나거나 협의하지 않았어도 책방을 열고 운영하면서 내내 생각해왔던 동네책방에 대한 철학이 같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내용을 회칙 첫 머리에 담았다.

꿈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
“‘동네책방’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서점 및 학습 참고서 판매 중심의 중소형 서점과 구분되는 개념으로서 단행본 도서를 주로 취급하며 지역사회를 근간으로 책문화를 만들어가는 작은 서점을 말한다. 이때 ‘작은’ 서점이라 함은 규모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거대 자본, 물질주의를 부추기는 과잉 소비와 과잉 노동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작고 낮고 천천히 가고자 하는 삶의 가치를 담고 있는 개념이다.”

꿈이 같은 이들과 한 자리에 모이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고맙고 반갑다. 우리의 작고 낮은 움직임이 지금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여리고 미세할 것이나 언젠가는 저 평원에 황금빛 일렁임으로 가득하게 되길 빌어본다. 책방넷의 멋진 출발을 축복하며 부디 오가는 길, 동네책방에 들러 책 한 권씩 꼭 품에 안고 돌아가시라 청원드린다.

백 창 화
괴산숲속작은책방 대표
‘작은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