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들, 현실성 떨어진 ‘안전속도 5030’ 제도 개선 요구 ‘봇물’
청주에 사는 A(58) 씨는 2021년 4월 ‘안전속도 5030’이 시행되자 크게 반겼다. 이 제도가 ‘빨리빨리’ 습성에 젖은 한국인 운전 습관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는 안전속도를 철저히 지키면서 운전했다. 이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5분 정도 더 걸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시외 운전할 때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5030을 포기해야 했다. 교통흐름을 방해하고, 뒤차 운전자들이 빨리 안 간다고 클랙슨을 울려댈 때 안전운전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운전자가 이 제도를 지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다른 운전자한테 욕먹어가면서 꼭 5030을 지켜야 하나 회의가 들었습니다.”
일률적 제한이 문제
‘안전속도 5030’은 일반도로에서 시속 50㎞, 주택가와 이면도로에선 30㎞로 최고속도를 제한하는 거다. 2021년 4월 17일부터 시행됐으니 만 2년을 넘겼다.
그럼에도 5030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5030을 위반해 딱지라도 날라오면 기분만 상하기 일쑤다.
제한 속도가 강화되면 교통사고 예방 효과는 분명 있다. 돌발상황을 알아차리고 자동차를 멈추는 데 필요한 정지거리가 짧아져 사고를 피할 수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시속 50㎞, 30㎞ 주행 시 인지능력이 각각 16.8%, 37.9%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안전속도 5030 시행으로 교통사고 위험이 줄어든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데 왜 운전자들은 불만일까.
도로 여건과 차량 성능이 향상돼 운전 환경은 좋아졌는데 5030은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천편일률적으로 속도를 규제하는 데 문제가 있다.
안전성은 누구나 인정하나 현실성이 떨어져 기대만큼의 효율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같은 도로라도 제한 속도가 제각각인 곳이 다수 있어 운전자들을 짜증 나게 만든다.
같은 도로인데 왜 달라
대표적인 곳이 청주시 흥덕구 LG로(路)다. LG로는 오창과학산업단지에서 청주테크노폴리스산단을 연결하는 3.5㎞ 왕복 4~6차선 도로다. 그중 3순환로에서 오창산단까지 연결하는 2.7㎞ 4차로 구간엔 인도와 횡단보도가 없어 자동차 전용도로 못지않다.
그런데 제한 속도는 시속 60㎞다. 반면 LG로와 만나는 2순환로, 즉 SK로(路)는 70㎞다.
심지어 LG로 800여 m 구간은 SK로와 차로 폭(6차선)이 같은 데도 진입부부터 60㎞로 제한해 운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운전자 B(49) 씨는 “SK로를 70㎞로 달리다 LG로로 진입하는 순간 60㎞로 떨어져 당혹스럽다”며 “왜 이런 차등을 둬 혼란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3순환로에서 오창산단까지는 자동차전용도로와 별반 차이가 없는데 60㎞로 제한하고 있다”면서 “이 구간에서 60㎞로 운전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나. 60㎞로 달리다간 다른 운전자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LG로와 연결되는 오창산단 도로(오송~증평)도 70㎞여서 LG로 60㎞ 제한은 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찰 관계자는 “미호천 통과 교량이 곡선이어서 이를 고려해 60㎞로 제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비현실적 제도 개선 절실
같은 도로라도 차량 통행량 등 주변 여건을 감안해 구간별로 속도를 제한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일부 구간의 경우 운전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주먹구구식 속도제한으로 불만을 사고 있다.
청원구 율량동 상리터널을 빠져나와 상리사거리에서 율량동 4거리까지는 60㎞로 제한하면서 율량동 사거리를 지나 청주농고 뒤 도로는 50㎞로 제한해 운전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그러나 흥덕구 비하동 롯데마트~시외버스 터미널 간은 60㎞를 적용하고 있다.
운전자 C(55) 씨는 “청주농고 뒤 도로는 비하동보다 차량 통행이 적은 데도 제한속도를 50㎞로 정한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도로변에 있는 아파트를 두고도 단속 제한 속도를 달리 한 것도 그렇다. 70㎞ 구간인 2순환로의 가마힐데스아파트 앞은 제한속도를 70㎞로 하고 있지만 4㎞ 떨어진 두진하트리움아파트 부근에는 60㎞를 적용하고 있다.
주민들은 “같은 6차선 순환로에 단속 제한속도를 달리한 것은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며 “하트리움아파트보다는 힐데스하임아파트 부근이 도로 양쪽에 마을과 상가 등이 많아 교통수요가 훨씬 많은 데도 속도제한을 거꾸로 한 것은 여건을 무시한 사례”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힐데스하임 도로의 제한 속도는 지난 2월 교통안전심의회에서 60㎞로 결정돼 현재 청주시에서 변경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며 “현실과 맞지 않은 부분은 점차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