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튀는 아이디어·이웃과 자연사랑 실천…
“와, 이런 주민자치센터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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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아이디어·이웃과 자연사랑 실천…
“와, 이런 주민자치센터도 있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3.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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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일도1동의 산지천 살리기, 진주 상봉서동의 지역품앗이
서울 마천2동 주말농장 가꾸기모두 지역에 뿌리 내린 공동체운동으로 ‘주목’

지난 11월 19∼21일까지 청주예술의 전당에서는 ‘2003 주민자치센터 박람회’가 열렸다.  청주시와 주민자치센터 활성화를 위한 풀뿌리 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이 박람회의 주제는 ‘주민자치로 지역의 미래를 준비한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박람회는 전시와 토론, 특강 등으로 진행됐다.
일반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주민자치센터 관계자들만의 축제였다는 점, 전시부스가 너무 좁고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산만했던 점, 특강과 토론이 전혀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한 것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여기 소개된 우수 프로그램 중에는 우리지역이 벤치마킹해도 좋을 프로그램들이 있어 취재했다. 이들 프로그램은 박람회 마지막 날 주최측에서 시상한 것과 관계없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공동선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소개한다.

‘제주시 일도1동의 ‘산지천 가꾸기’

퇴폐향락분위기 몰아내고 아름다운 자연형 하천으로 ‘일대 혁신’

제주시 일도1동 주민자치센터는 제주 도심을 관통해 흐르는 대표적인 하천인 산지천을 살려냈다. 제주의 관문이며 용천수가 솟아나 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했던 이곳은 70년대 도시 근대화사업이 시작되면서 복개, 90년대 초반까지 인근 칠성통과 함께 최고 상권을 형성했다. 그러던 중 건물의 노후로 안전문제가 제기되자 상가주들은 재건축을 요구했고 여기 맞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산지천을 복원하자는 여론이 일어 98년 제주시는 급기야 상가를 철거하기에 이른다.

변동호(주민자치위원회 간사)씨의 말이다. “시에서 산지천을 복개 전 상태로 돌려 놓았는데 창녀촌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노숙자들이 배회하고 물도 상당히 오염돼 있는 것 아닌가. 이 때 주민들 사이에서 산지천을 살리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이 곳이 한참 번성할 때 숙박업소와 식당, 그외 향락산업들이 자리를 잡아 하천을 복원했는데도 이런 퇴폐향락적인 것들이 남아 있어 먼저 이런 요소부터 없애는 일을 했다.”

그래서 이 지역의 주민자치위원과 주민 등 44명은 2002년 7월 ‘산지천가꾸기 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자체 규약을 만든 뒤 금년 5월에는 사무실도 개소했다. 그동안 여기서 한 일은 새집 달아주기, 조기청소, 쓰레기단속, 윤락호객행위 단속, 청소년 선도활동 및 야간 무단취사 계도활동, 불법 주정차단속 등이다. 그야말로 지자체와 경찰들이 할 일을 주민 스스로 해결한 것. ‘아름다운 관광 제주’의 이미지를 먹칠해서는 안된다는 신념들이 이들을 뭉치게 했고 움직인 만큼 성과도 거두었다고 변씨는 자랑했다.
“주민들의 이런 운동에 발맞춰 시에서는 산지천 주변에 4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음악분수를 만들었다. 또 생활하수를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는 시설을 설치해 지금은 수질이 1급수로 바뀌었다. 여기서 지하수가 나오는데 제주 삼다수 수준이다. 환경이 이렇게 좋아지니까 관광객들이 음악분수와 폭포를 보러 몰려온다.”

실제 변씨가 건네준 ‘산지천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자료집을 보자 숙박업소와 식당들이 줄지어 섰던 산지천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특히 야경이 아름다웠다. ‘산지천가꾸기 추진협의회’에서는 노점상과 자판기 설치도 불허하고 주변에서 삼겹살 구어먹는 행위 등도 철저히 단속한다는 것이다. 이 협의회에서는 매월 한 번씩 평가보고회를 열고 무엇이 잘 못 됐는가를 반성하는 기회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씨의 설명을 듣다보니 무심천 살리기가 현안인 청주시에서도 이들의 활동을 타산지석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충분히 있었다. 특히 콘크리트 하상구조물이 전혀 없고 과거 멱감고 뛰어놀던 때의 모습으로 복원하려고 노력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무심천과 마찬가지로 제주도민들에게 산지천은 추억과 역사를 많이 간직한 곳이라고 했다.

변씨는 “지역주민들이 산지천가꾸기운동을 통해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치 능력을 키웠다. 주민자치센터는 크고 작은 취미·여가프로그램을 동아리활동으로 묶고 주민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에 나서 지자체에 요구하고 또 요구해야 한다”며 “산지천은 올해 자연생태복원 우수사례로 선정돼 환경부장관상을 받았다. 청계천 복원을 시작한 이명박 서울시장도 벌써 몇 번이나 다녀갔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진주시 상봉서동의 지역품앗이 ‘상봉레츠’
기술·서비스·물품 주고 받아

상봉서동의 ‘상봉레츠(SangBong 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는 한마디로 옛날 품앗이운동을 현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상봉품앗이 회원으로 등록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서비스, 물품 등을 서로 주고 받는 다자간 교환거래 제도.

우희(주민자치센터 자원봉사자·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씨는 “현금 대신 무형의 가상화폐(상봉머니, SM)로 물품과 서비스를 서로 교환한다. 이런 운동을 하는 곳이 전국적으로 몇 군데 되는데 더불어사는 지역공동체의식을 기를 수 있어 좋다. 진주시민 40만명이 모두 고객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진주시는 아름다운 인정이 넘쳐 흐를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주부 A는 중고 컴퓨터(10만원)를 공급받고, 아기를 돌보아(3만원) 줌으로써 품앗이 잔액이 -7만원인데 반해, 전직 자동차수리공 B는 자동차 정비(3만원)를 해주고 아기를 맡김(3만원)으로써 잔액이 0이 되었다. 그리고 농민C는 농사지은 쌀 20㎏(4만원)을 제공하고 차량 수리(3만원)를 받아 +1만원이 된다. 이런 식으로 계산한 회원 계좌는 ‘성남품앗이센터’에서 관리하고 온라인 상에서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상봉레츠 회원은 개인이 160명, 업소가 60개로 증가추세에 있고 그동안 300여건을 거래했으며 80만 SM이 유통됐다고 상봉서동 주민자치센터는 밝혔다. 이 가상화폐를 현금으로 계산했을 때는 500만원 가량 된다. 따라서 상봉레츠의 회원들끼리는 서로 무엇이든 주고 받을 수 있다. 다만 업소에서는 금액의 10∼20% 선에서 가상화폐를 받고 몇 군데는 50%까지도 이 화폐가 통용된다는 것이 우씨의 설명이다.

우씨는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여름에 수박을 한 통 샀는데 남을 것 같아서 한 회원에게 절반(3000 SM) 주었다. 그러자 그 회원이 중고 장난감(5000 SM)을 줘서 -2000 SM이 되었는데 이것은 기회 있을 때 언제든지 갚으면 된다. 개인끼리는 협의하에 노동력 100%를 모두 SM으로 주고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니 서로 나누는 것이 생활화가 됐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씨는 ‘품앗이통장’을 내밀었다. 여기에는 ‘공동체화폐 SM으로 만드는 행복한 마을 아름다운 이웃만들기’를 지향한다는 설명과 함께 회원 동의서, 회원가입 방법과 거래절차 등이 소상히 적혀 있었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액이 50만원 이상을 넘으면 신용불량자로 찍혀 거래를 중단해야 하고 값비싼 물건 교류는 자제해야 하는 등 나름내로 규칙도 있다고. 그는 이어 “업소에서는 단골 확보에 도움을 받으므로 좋아한다”며 “품앗이의 장점을 아는 사람들은 즐겨 이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홈페이지(www.sbsd.net)도 만들어 모든 것이 온라인 상에서 가능토록 해놓았다.

한편 상봉서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산하에 품앗이운영분과위원회를 두고 월 2회 회의를 열어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해 나간다. 또 상봉레츠를 홍보하기 위해 좋은음식상 시상, 품앗이 경매, 회원 교류 등을 골자로 하는 ‘품앗이만찬’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회원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한 주민자치위원은 말했다.

그래서 ‘품앗이만찬’은 몰랐던 이웃을 알게 돼 각종 경조사에 참여하고,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돌보는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상봉레츠의 미덕은 바로 이런 데 있었다. 서로 노동력과 물품을 교환함으로써 이웃과 정을 쌓아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데는 ‘그만’이었다.

서울시 마천2동 ‘사랑의 김장담가주기를 위한 주말농장가꾸기’
이웃사랑 실천 이 정도는 돼야…

씨뿌리고 키워 김장까지 송파구 마천2동은 경기도와 접해 있는 외곽지역으로 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독거노인세대가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그래서 마천2동 주민자치센터는 이들을 도울 길을 찾다가 노는 땅을 발견하고 주말농장을 만들었다. 최근 김장철이 되자 여기저기서 소외된 이웃들에게 김장담가주기 행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차원이 다르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아예 농사를 짓는 것이다. 배추씨를 뿌리고 키워 수확해서 김장 담는 것까지 모두 주민자치센터에서 도맡고 있다.

조을래(마천2동사무소 직원·사진 오른쪽)씨는 “지난 2000년에 풀이 무성한 노는 땅 500평을 보고 주인에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주말농장을 하고 싶다고 하자 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그 해 8월에 배추 3000포기를 심어 2000포기를 수확했다. 주민자치위원과 부녀회원, 직능단체 회원들이 나서 김장을 해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세대에게 김치를 나눠주고 사회복지시설과 노인정에는 배추를 준다”며 “올해는 농장 땅이 300평으로 줄었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는 마음놓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필요해 예산까지 세웠다”고 말했다.

주말농장에는 배추 외에도 오이와 가지, 토마토, 상추, 열무, 쑥갓 등이 자라고 배추씨를 뿌리거나 수확할 때는 동네잔치가 돼 흐뭇한 광경을 연출한다는 것. 이어 조씨는 “배추밭에 정자를 만들어 주민들이 대화도 나누고 회의도 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힘든 일은 나눠서 하고 씨 뿌릴 때는 유치원 어린이들도 와서 거든다. 이렇게 되니 노인들은 배추밭에 물을 주고 풀도 뽑아 상부상조정신을 저절로 기를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실제 이 곳에서 만든 팸플릿을 보자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배추를 수확하고 자원봉사자들이 김장을 담는 사진 등이 실려 있다.

주민자치위원들의 이런 노력 덕분에 마천2동 국민기초생활수급자 140명 중 70명은 매년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김치를 맛보고 올해까지 벌써 4년째 김장할 걱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자치위원들은 주말농장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는 것을 비롯해 주민공동체 형성, 이웃사랑 실천, 생활이 어려운 가정의 소외감 해소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 끌어들여 다양한 계층이 봉사할 수 있도록 폭을 넓히는 것과 넉넉한 예산을 확보해 이 일을 영구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제.

지난 20일 기자가 취재하러 갔을 때 조씨는 “오늘 배추 뽑고 내일 김장하는 날인데…”하며 못내 아쉬워했다. 김장시 필요한 경비는 8개 직능단체에서 10만원씩 모아 해결하고 그 외에는 돈 쓸 일이 없다는 점도 주민자치센터에서 주말농장을 이끌어갈 수 있는 요인중 하나로 보인다. 특히 장소와 시설, 강사를 확보할 필요없이 현장에서 할 수 있다는 점과 무엇보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대의 명분에 주민 모두가 지지한다는 점이 이 사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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