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축제 과연 농민이 주인공?
상태바
농산물축제 과연 농민이 주인공?
  • 권영석 기자
  • 승인 2018.10.25 0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원생명축제 참여농가 75곳, 행사장 반은 기업 홍보관과 먹거리
“생산자-소비자 만나는 직거래장 펴주는게 가장 중요” 농민들 주장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10월에만 전국에서 318건의 축제가 열린다. 충북에서는 17건. 제철 생산되는 농산물을 주제로 한 농산물 축제도 벌써 4건의 행사가 끝났다.

청원생명축제, 증평인삼골축제, 음성인삼축제 그리고 보은대추축제가 10월에 열린 농산물축제. 4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진행했다. 주제는 유기농, 인삼, 대추 등으로 서로 달랐지만 내용은 유사했다. 그러나 대표작으로 내세울 게 없었다.

지역축제들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황재 연구원은 “축제들은 대부분 비슷한 콘텐츠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가치를 녹여내느냐가 지역축제 성공의 열쇠다”며 “문체부는 지난해 ‘괴산고추축제’만을 충북의 유망축제로 선정했다. 축제는 많았지만 특색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축제에 대해 농민들 사이에서도 뒷말이 나온다. 그들은 축제가 회차를 거듭하면서 취지는 사라지고 행사업체들의 전유물이 됐다고 말한다. 올해 증평인삼골축제에 참여한 한 농민은 “농산물축제는 지역농가의 판로와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다. 농가들이 소비자들과 만나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장을 펴주는 게 목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직거래 의미는 사라지고 어떤 연예인이 오는지에만 관심을 둔다”고 주장했다.

오창미래지테마공원 청원생명축제장 /청주시 제공

 

청원생명축제 10년차 행사 맞나

올해 청원생명축제는 25억원을 들여 야심차게 준비했다. 예산의 대부분을 전문업체에 위탁해 행사 외연을 확장했다. 그래서 축제에는 청주시 추산 약 51만 3000여명이 찾았다.

청원생명축제는 청주 우수 농축산물을 맛보고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농특산물판매장과 축산물판매장, 셀프식당을 마련했다. 여기에 관람객을 위한 폐막축하 공연, 청원생명가요제, 전국톱10가요쇼 등 대형 공연도 유치했다. 이밖에도 고구마 수확체험을 비롯한 60여개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래서 1회 축제가 열린 10년 전에 비해 2배가 넘는 관람객이 축제장을 찾았다. 인파가 몰리며 축제는 체계를 잡아갔다. 핵심콘텐츠인 농산물의 품질을 위해 농가의 참여 기준도 세웠다. 청주시 관계자는 “사전 답사를 거쳐 올해는 75개 농가와 단체가 참여했다. 농가들은 품질과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곳들이다. 그리고 평소 로컬푸드 직거래 장터에 참여한 경험 있는 농가도 있다. 이런 농가들에게는 가산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방침이 경험 없는 농가들에게 진입장벽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직거래장터가 필요한 사람은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농민들이다. 청원생명축제에는 많은 농민들에게 판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외연적으로 커지는 축제에 회의를 느껴 이탈한 농가들도 발생했다. 상당구에서 농사를 짓는 이경희 씨는 지난해까지 축제에 참여했다. 그는 “참여하는 농가들은 직거래를 통해 수확물을 소진하려 한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기업체험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기업들로 행사장 반이 채워진다. 행사장이 총체적으로 상업적으로 변모했다”고 말했다.

그는 “볼거리가 많아져서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농민들이 참여하는 직거래 장터의 의미가 퇴색했다. 관람객이 티켓으로 물건을 교환하는 비율도 떨어졌다. 그래서 몇몇 농가들 사이에서 ‘괜히 가서 고생할 필요가 있겠냐’는 의견들이 나왔다”며 축제에 참여하지 않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다른 지역의 많은 농민들이 참여해 다양한 농산물을 보여주려는 처음 의도와 다르게 청원생명축제는 공연과 체험관에 힘을 쏟는 행사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10년이 흘렀다. 처음 취지처럼 청원생명브랜드의 가치를 알리고 농민이 함께 상생하는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중심을 잡을 콘텐츠와 지자체의 의지가 필요하다.

 

보은대추축제 1000여 대추농가의 희망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보은대추축제가 열렸다. 보은군 추산 약 90만 1400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지난해 80만명보다 늘어난 수치. 당초 올해 100만 관객을 목표했지만 가을철 겹치는 축제들이 많아 달성하지는 못했다.

2018 보은대추축제에 나온 탐스런 대추/뉴시스 제공

그럼에도 보은대추축제는 농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는다. 보은에서 대추농사를 짓고 있는 정희종 씨는 “보은대추축제는 지역 농가들에게는 꼭 필요한 행사”라고 말했다. 그는 “대추를 생산하고 나면 지자체나 단체들에서 소진하는 물량들도 있다. 하지만 상당량은 농민들이 뜨내기처럼 돌아다니며 팔아야 하는데 보은대추축제 참여 농가들은 축제를 통해 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소진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은군 관계자는 “보은 대추축제를 통해 농가들은 각자 물량의 약 50%를 소진한다. 이 때문에 축제에는 자체 판로를 갖고 있는 대규모 농가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중소농가들이 참가하고 읍면동에서 순서를 짜 3~4일에 한 번씩 농가들이 바뀐다. 자리도 그때마다 바꿔 많은 농민들이 골고루 물건을 팔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말했다.

그 덕에 중소농가들은 판로에 큰 도움을 받는다. 정 씨는 “나이든 농가에게 대추축제는 고마운 행사”라며 “보은대추축제가 전체 농민이 참여하는 더욱 의미있는 축제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농민들 입장에서 좋은 행사이지만 직거래장터, 먹거리장터, 트로트음악제 등 같은 볼거리만 너무 반복하는 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있다. 관람객들을 위해 보은대추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